2009_06_07 페루_리마 : 낯선 땅, 친근한 풍경
북미와 남미는 비슷한 경도에 위치에 있으므로 시간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까지 있었던 미국 동부와 지금 여기 페루 리마는 같은 시간대이지만
써머타임때문에 한 시간의 시차가 있다.
어젯밤 출발한 비행기는 오늘 이른 아침 도착했다.
부시시 불편했던 비행기 좌석에서의 잠을 깬 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조금씩 설레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항에 내려 입국수속을 할 때부터 마스크를 쓰고 있는 직원들을 보자
설레임은 사라지고,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 무리없이 입국심사와 세관신고를 마치고 나왔다.
200불 정도를 환전하고 돌아서는데
거머리로 익히 소문난 페루의 삐끼(?) 아저씨들이 붙기 시작한다.
자기 택시를 타라는 것이다.
미리 적어 놓은 주소를 보여주자 25불을 달라고 한다.
10불을 말하자 안된단다. 자기는 일반택시가 아니고, 공항에서 인증하는 택시란다.
고로, 안전을 보증한다는 것이다.
페루 특히 대도시의 치안은 익히 악명높다.
인명사고는 거의 없지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 날치기, 각종 사기가 빈번하다는 말을 익히 들었다.
그에 따른 겁도 나고, 완전 낯선 곳이다 보니
처음 접근한 택시 기사와 왠만하면 잘 해볼 생각이었다.
다시 20불을 제시하길래, 그렇담 우리도 15불,
결국, 17불에 우리의 첫 거래가 성사됐다.
일요일 아침이라 출근시간의 정체는 없었지만
그래도 페루의 수도로서 리마라는 도시의 아침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한국과는 완전 지구 반대편, 미국과도 마찬가지로 반대편 남반구, 처음 도착해 모든게 낯선 곳,
사람들, 풍경들, 뭔가 다른 향내들...
이러한 낯설음을 실컷 느껴보고자 하는데,
점점 왠지 모르는 친근함이 느껴진다.
주로 원주민 비율이 높은 서민들의 모습들은 왠지 우리와 비슷하고
복잡한 도로와 신호 그리고 정신없는 운전과 크락션 소리,
빼곡하지만 낡고 허름한 집과 건물들,
우리나라 모든 차종의 중고차 전시장과 같은 도로위 자동차들,
흡사 내 어릴 적 2-30년 전 서울의 모습과 같다.
첫 숙소에 잘 도착했다.
한국인 중년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짐을 풀자마자 우리가 쏟아내는 수많은 궁금한 점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일단 오늘은 센트로 라고 하는 구시가지로 나선다.
택시를 잡아 타는데, 택시를 타는 요령은
먼저 행선지를 말하고, 가격을 흥정한다. 미터기가 없다.
속도계가 없는 차도 직접 봤다.
어이 없다가도 한편으로 재미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가장 많은 택시의 차종은 바로 티코 라는 것이다.
산마르틴 광장(Plaza San Martin)에 내렸다.
택시 요금으로 흥정끝에 8솔, 우리돈 3000원 정도의 돈을 지불했다..
상대적으로 싼 물가를 실감한다.
페루 독립운동에 큰 업적을 남긴 마르틴 장군의 기마상을 중심으로 한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 아르마스 광장까지가 센트로, 바로 구시가지이고,
이 둘을 잇는 라우니온 거리(Jr. de la Union)가 중심거리이다.
라우니온 거리를 따라 올라가는데
퍼레이드 행렬이 내려온다.
앞부분에는 동물분장을 한 사람들이 뛰어다니다
중간에 여러 악기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며 지나가고
그 뒤를 이어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전통춤을 춘다.
어떤 의미의 퍼레이드인지는 전혀 모르지만
누군가 마련한 우리의 페루 도착을 축하하는 이벤트라고 우리 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리마의 구시가지 센트로는 예전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에서 부터 요즘 지어진 상점들 엉켜 나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리마에 존재하는 식민지 시대의 모든 건축물들은
그 옛날의 영화를 드러내며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슬픈 역사의 서글픔을 안고 있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 당도했다.
아르마스 광장 정면에 자리잡고 철담으로 둘러쌓인 곳은 바로 대통령궁이다.
정오가 되면 경비대의 교대식이 있는데
그걸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벌써 와 있었다.
우리도 그들 틈에 껴서 시작되길 기다린다.
개선행진곡을 연주하는 군악대가 앞장선다.
군악대는 익히 귀에 익은 행진곡들을 계속 연주하고
뒤를 이어 경비병들이 씩씩하게 뒤따른다.
가장 흥미있었던 것은 맨 마지막 순서에 울려 퍼진 곡이
바로 엘 콘도르 파사 였다라는 것이다.
이미 사이먼과 가펑클의 노래로 알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페루를 상징하는 곡임을 몸으로 실감한다.
5솔(2000원) 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산크리스토발 언덕(Cerro San Cristobal)에 오른다.
버스는 우리나라의 마을버스를 연상시키지만 훨씬 낡고 노후되었다.
가는 길에 거치는 마을은 꼭 예전 삼양동을 보는 듯 하다.
산기슭에 빼곡히 들어선 낡은 집들...
하지만 나름 이곳은 색깔을 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나타낸다.
낭떠러지 길을 아슬아슬 잘도 올라간다.
언덕 정상에서 보니 리마 시내 전체가 내려다 보이지만
안개와 매연이 뒤섞인 스모그가 얼마나 심한지 또한 확인 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놀러 온 사람들을 보니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남산이나 창경원에 놀러 갔던 생각이 난다.
리마 치안에 대해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너무나 순박한 사람들이다.
한 가족이 길거리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는데, 그 모습이 너무 순박해 보여, 옆에서 나도 카메라를 들이대니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본다.
그들은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계속해서 설명해준다.
추측해보면, 차가 조금 늦어지고 있고, 지금 이 차는 우리가 타는 차가 아니고
우리는 어떤 차를 타야 되고 등등
우리도 옛날 생각에 길거리에서 파는 치차와 옥수수를 사먹었다.
역시, 불량식품(?)이 맛있다...
완전히 낯선 땅,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친근한 풍경들...
사실, 그 친근한 풍경을 2-30년전의 한국으로 표현한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도시화, 산업화의 관점에서이다.
물론 페루가 그 전철을 밟아 산업화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산업화의 폐해는 최소화 하고, 이들의 순박한 삶은 영원히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