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6_09 페루_우아라스 : 슬픔을 간직한 신령한 안데스
아침 일찍 우아라스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투어 안내하는 일명 삐끼들이 몰려온다.
어떻게 하는게 좋을 지 몰라, 함께 버스 타고 온 이스라엘 여행자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은 장기간 우아스카란 산을 트레킹 한단다.
우리는 하루만 머무르기 때문에 그냥 투어를 하기로 하고 흥정을 시작했다.
처음에 일인당 45솔을 부른다.
우리는 30솔을 불렀다.
안된다고 하길래 그냥 돌아서니 40솔을 부른다.
30솔을 고집하자 35솔까지 내려간다.
우리도 이쯤에서 오케이하고 여행사 사무실에서 계약을 하려하는데
코스에서 몬테레이가 빠져있다.
아내가 온천을 좋아해서 우리가 생각한 코스는
몬테레이에서 온천을 하고 융가이, 양가누코 호수를 둘러 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몬테레이를 계속 주장하자 40솔에 우리만 그곳에 들르기로 했다.
8시에 출발한다길래
리마와는 달리 아침의 상쾌함이 가득한 고산 도시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우아라스는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000 미터가 넘는 곳에 위치해 있다.
무엇보다도 저 멀리 보이는 안데스의 설산들이 너무 너무 인상적이다.
만년설을 처음 보는 나로서는 계속 감탄을 연발한다.
이 기분에 취해 아르마스 광장까지 걸어가는데
숨이 가쁘고 몸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아내는 나보다 더 힘들어 한다. 바로 고산병이다.
하룻밤 사이에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높은 곳에 오르니 느껴지는 증상이다.
약국에 들러 고산병을 약을 한 알 사먹고 투어를 출발한다.
원래 투어는 9시반쯤 시작되는데
우리는 8시에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택시를 타고 먼저 몬테레이에서 온천을 하고 있으면
10시에 데리러 와서 투어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온천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그런 시설은 아니다.
천연 온천을 수영장처럼 지어놓고 담아 놓았다.
어떤 성분인지 모르겠는데 온통 황토빛깔이다. 어째 좀 지저분하다.
어쨌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좀 찝찝하긴 하지만 플라시보 효과를 기대해본다.
10시가 조금 넘어 투어 일행과 합류했다.
버스는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전통의상을 입은 가이드는 스페인어만 사용한다.
영어로 한다고 해서 잘 알아들을 수 있을 지 자신없지만 그래도 집중이나 해볼텐데
스페인어로만 얘기하니 가이드의 설명은 완전히 포기하고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안데스의 신비에 빠져든다.
계속해서 펼쳐지는 안데스의 설산들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설산 고봉의 전망이 좋은 곳에 가끔씩 차를 세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하고
기념품을 사도록 전통 마을에 잠깐 잠깐 머무르기도 한다.
우리는 기념품은 사지 않고 사진찍기와 군것질 사먹기에 열중이다.
잉카콜라도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는데, 페루 아이스크림 은근히 맛있다.
북쪽으로 평지만 달리던 차는 융가이에서 방향을 틀어
동쪽의 안데스 산지로 오르기 시작한다.
구불구불 비포장 산길을 아슬 아슬 잘도 오른다.
우아스카란산이 점점 가까워 오는 듯 하다.
만년설이 손에 잡힐 듯 하고 산세가 험해진다.
드디어 해발 4000미터에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양가누코 호수가 나타나자
모두가 탄성을 지른다.
이 높은 곳에 이런 아름다운 비경이 숨어 있다니...
고산병 증세로 몸이 힘든 상황에서도 여기 저기 카메라를 들이대 본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본 캐나다 밴프 국립공원에 있다는 레이크 루이즈가 연상되기도 하는
양가누코 호수는 석회 성분으로 인해 진한 연두빛을 내며 신비함을 발산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긴한데
아내가 계속 힘들어 하니 한편으로 걱정이다.
우리만 하는 투어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얼른 내려가기만 바랄 뿐이다.
이윽고 오른 길을 다시 아슬아슬 내려와 융가이에 도착했다.
가이드가 스페인어로 설명하는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책을 통해 사연을 익히 알고 있어 그 느낌이 전달된다.
1970년 이 지역에 큰 지진의 여파로 우아스카란 산이 산사태가 일어나
이 지역이 그대로 흙에 파묻혔는데 18000 명 주민 전체가 그대로 함께 파묻혔다는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에 맞춰
일부러 이 곳에 왔는지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피해지역을 감싸듯 저 우아스카란 산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우뚝 서 있는 예수상이 왠지 가슴 저민다.
다시 우아라스로 돌아왔고 투어는 끝났다.
바로 야간 버스 터미널로 가서 늦은 저녁을 먹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틀 연속 야간버스에서 잠을 자야되는 것도 걱정이지만
제발 고산병에서 벗어나고 싶다. 계속 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