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6_25 볼리비아_라파스 : 마이클 잭슨 추모의 밤
아침에 서둘러 짐을 챙기고 쿠스코 공항으로 향한다.
12일간의 정든 쿠스코 생활은 이제 안녕이다.
스페인어 수업이 아니었다면 여행 중에 한 곳에 이토록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성한 계곡과 마추픽추도 갔다오고, 인티라이미 축제도 보았지만
무엇보다도 아르마스 광장 벤취에 앉아 쪼였던 햇볕과 그 나른한 오후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쿠스코 공항에서 수속 절차를 밟는다.
그래도 국제공항인데 시스템이 좀 거시기 하다.
글쎄.. 짐을 다 풀어 일일이 눈과 손으로 검사한다. 어느 세월에 다 하려는지...
앞에 몇몇 사람을 꼼꼼히 검사하다가 자기들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우리부터는 좀 설렁설렁한다.
하늘의 모습이 다른 비행에서 봤던 그림과 사뭇 다르다.
안데스 고원을 지나며 저 멀리 만년설로 덮여 있는 고봉들이 보이고
한 참을 지나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쯤으로 예상되는 곳에 티티카카 호수도 보인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La Paz)에 도착했다.
세계 최고(高)의 수도이다.
해발 3800 미터 라고 하는데, 이미 3500 미터 쯤 되는 쿠스코에서 적응하고 와서 별 무리는 없다.
하지만 감기때문에 난감한 경우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 일 없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왔다.
예약된 숙소도 없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로키라는 호스텔에서 누군가를 픽업 나온 것이 보였다.
혹시 2자리 남는 거 없냐고 했더니, 반색하며 얼른 따라 오란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모든 게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좀 아니 많이 비싸다.
화장실 전용 더블룸이 140볼리비아노(20불) 이면 페루보다도 센 가격이다.
내일부터는 다른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
일단 오늘은 그냥 로키 호스텔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이 호스텔은 기업형 숙소로 서양의 젊은이들 위주의 호스텔이다.
2층에 커다란 식당 겸 바가 있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젊은이들이 여행 다닐 생각은 안하고 맨날 여기 모여 노는 것 같다.
오늘 아내와 나 모두 몸이 별로 안좋다.
내 감기가 아내까지 옮아져 둘다 지금 상태가 별로다.
생각보다 비싼 숙소니, 본전도 뽑을 겸 실컷 쉬어 보자.
인터넷도 하고, 책도 좀 보고, 침대에 누워서 뒹굴다 보니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인터넷 뉴스에 속보로 마이클잭슨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있는데
2층 바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흘러 나오고
서양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마이클잭슨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듯 했다.
여기 바에서는 매일 밤 어떤 주제로 파티를 열어 노는 듯 한데
오늘은 모든 주제를 취소하고 마이클잭슨 추모의 밤으로 변경한 듯 하다.
밤새 마이클잭슨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나 또한 마이클 잭슨과의 인연을 억지로 떠올려 본다.
중학생 시절, 실내화 밑창이 닳도록 뒤로 미끄러지 듯 걸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밤
마이클 잭슨 추모의 밤에 엉겁결에 나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