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7_08 볼리비아_수크레 : 미리 보는 유럽
어제 오후 5시에 산타크루스를 출발한 버스는
오늘 오전 9시가 거의 되어 수크레에 도착했다.
장장 16시간 야간 버스를 타고 왔지만 이제는 가뿐하다.
문제는 숙소를 정하는 문제다.
짐을 맡아 줄 곳이나 사람이 있다면 문제가 아니다.
혹은 여러 날을 머무른다면 일단 첫날 숙소를 정하고
좀 더 저렴하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갖춘 숙소를 찾아 다니면 되는데,
오늘 처럼 하룻밤만 잘 거고, 무거운 짐을 들고 돌아다니기는 힘들고,
이런 상황에서는 가이드 북을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오늘도 가이드 북이 알려 준 숙소를 찾았다.
생각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다.
책에는 70볼리비아노(10달러) 라고 되어 있는데 90볼리비아노 란다.
다른 곳을 알아보러 나갔다가 서로 낑낑매고 짐을 들고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묵기로 했다.
수크레는 볼리비아의 헌법상의 수도다.
19세기 초, 볼리비아가 독립하여 건국할 당시 최초 수도였으나
각 행정기관들이 점차 라파스로 옮겨져 현재는 라파스가 실제 수도가 되었다.
지금은 최고 재판 기관만 남아 있다.
수크레는 그러한 배경때문에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분위기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언뜻 본 도시 분위기도 유럽의 어느 한 도시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대분분의 집과 건물들이 흰 색 벽에 붉은 지붕을 하고 있고
중세 유럽 양식의 교회들이 즐비하다.
가이드북에 의하면 수크레는 도시 조례로 건물에 흰색만 칠하도록 되어 있단다.
가장 중심이 되는 광장에 가보니 매우 화려하다.
볼리비아 같지 않은 착각이 들 정도다.
아내가 싸고 맛있는 집을 책에서 봤다며 가보잔다.
들어가 보니 고급스럽고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광장의 모습 또한 멋지다.
그런데 가격이 많이 비싸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아내가 또, 먹는 거 만큼은 잘 먹고 다니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꺼냈다.
그래 좋다, 먹고 보자... ㅋㅋ
2인분에 100볼리비아노(15달러) 내고 아주 맛있게 배불리 그리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잘~ 먹었다.
오늘은 더욱 힘을 내어 구석 구석 돌아보자.
시내를 헤집고 다닌다.
거리 거리, 골목 골목 마다 앞서 말했던 수크레만의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오르막을 한참 올라 레콜레타 교회로 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뒤편 2층에 자리잡은 성가대석이다.
오랫동안 성가대 반주와 지휘를 해 온 아내가 유독 관심있게 부러운 듯 바라본다.
교회 안을 두리번 거리는데 젊은 사제가 기타를 치며 진지한게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관을 든 사람들이 들어오고 계속 검은 옷을 입은 행렬이 입장했다.
장례 미사가 시작될 모양이다. 호기심이 발동하기 했지만
여행자 차림으로 구경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교회를 나왔다.
교회 앞은 넓은 광장이 있고 그 끝에 긴 회랑이 있는데
그 회랑에서 바라 본 수크레 시내가 장관이다. 이 곳 까지 오르막을 한참 올라 온 게 실감난다.
다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와 라마르세르 교회로 갔다.
이 곳은 성화(聖畵)를 비롯한 화려한 장식의 볼거리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종탑에서 바라보는 수크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레콜라타 교회 회랑은 이 곳보다 훨씬 높아서 시내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 곳에서 바라 본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의 수크레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 숨 돌리자,
자그마한 공원 한 켠 벤치에 앉아 쉬는데
누군가에게 들었던 정보 하나가 떠올랐다.
수크레의 큰 할인매장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무선 인터넷을 할 수 있다고 했었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가보니 1층은 슈퍼마켓이라 씌어 있는 할인매장이고 2층은 영화관과 패스트푸드점들이 있는
흡사 우리나라의 코엑스를 축소해 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수크레의 젊은이들은 여기에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컴퓨터를 꺼내어 인터넷을 했다.
Wi-Fi 존 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는데
실제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이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 본다.
문제가 발생했다.
무선 인터넷 연결 신호는 좋다고 나오는데
내 컴이 좀 이상하다.
연결이 점점 느려지고 자꾸 끊긴다.
재부팅을 해도 같은 현상이다.
컴퓨터는 우리의 3순위 짐이다.
1순위는 여권, 2순위는 현금과 카드, 3순위가 바로 컴퓨터이다.
여권과 돈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거고
컴퓨터는 사진을 저장하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기본적인 기능 말고도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하는 수단이 되는 소중한 물건인데...
이걸 어쩌나......
근심 가득히 어두어진 수크레를 가로 질러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