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7_09 볼리비아_포토시 : 펌프의 추억
아침에 일어나 포토시로 떠날 채비를 완전히 갖추고
어제 갔던 마트 2층 무선인터넷 존으로 향했다.
9시쯤 갔더니 10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할 수 없이 1시간을 돌아 다니다 다시 왔다.
컴퓨터가 계속 이상하다.
이 곳 무선인터넷 설정에 문제가 있는 건지 내 컴퓨터가 이상한 건지 원인을 모르겠다.
이 것 저 것 건드려 보지만 효과가 없다.
10년 가까이 IT업계에서 일하면서
컴퓨터와 함께 살았건만 아직도 컴맹인 내 자신이 답답하기만 하다.
안되는 인터넷을 어찌하랴. 그냥 다시 돌아 올 수 밖에..
다시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하고 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오늘은 포토시로 간다.
3시간 정도 걸려 포토시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이 가능한 숙소를 잡아
다시 컴퓨터를 켜고 확인해 보지만 여전히 문제다.
연결은 되는데 무지 느리다.
무슨 바이러스가 창궐한다길래 백신을 간신히 다운받아 검사해 봐도 이상이 없다고 나온다.
계속 붙들고 있어봐야 소용없는 일,
컴을 접고 시내로 나갔다.
산프란시스코 교회 종탑에 올라갔다.
포토시의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무엇보다도 포토시의 상징과도 같은 세로리코 라 불리는 매끈한 산이 우뚝 서있다.
포토시는 지금도 광산으로 유명한데
스페인이 남미에 처음 도착해 포토시의 은광맥을 발견하여
그 은을 찾아 유럽인들이 몰려 들어 17-18세기에는 남미 최대의 도시로 성장했다 한다.
은 채굴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졌는가 하면
당시 포토시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은화 때문에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은이 바닥을 드러내어 쇠퇴하던 포토시는 다시 다른 광물이 발견되어
광산 도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영화를 누리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광산 노동자들의 삶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점심 겸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오늘까지만 잘 먹기로 하고 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거하게 잘 먹고 나오니 밤이다.
소화도 시킬 겸 포토시의 밤을 헤맸다.
중심광장 주변을 돌아 다니다가 한쪽 골목이 이쁘길래 주욱 들어가 보았다.
한쪽에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젊은 친구들로 북적대는 오락실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나 들어가 보았다.
한글이 나오는 한국에서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오락기계들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유행했던 펌프가 눈에 띄었다.
신기해 하면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아내가 뭐 그리 바보같이 웃으면서 보고 있냐고 힐난해도 한참을 서 있었다.
예전에 니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펌프라고 하던 때가 잠깐 있었다.
장난스럽게 말하곤 했지만 정말로 좋아 했었다.
백원 짜리를 기계 앞에 수북히 쌓아 놓고 1시간 넘게 하곤 했었다.
춤은 전혀 못 추지만, 마치 춤을 추듯 음악에 맞춰 과장된 동작으로 발판을 딛으면
어느새 온 몸이 땀으로 젖었고,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양복을 입은 채, 퇴근 길에 대학로 어느 오락실에 들러
혼자 땀에 젖어 펌프를 몇 판 하고 내려 오면
중고생들이 뺑 둘러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종종 있었다.
아마도 그 친구들, 양복에 넥타이 휘날리며 애들 모여 있는 오락실에서 오버하는
왠 아저씨가 이상하게도 보였을 게다.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 포토시에서
한국에서 보던 것을 본 것에 대한 신기함과 더불어
그 시절 추억이 떠올라 우습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참 묘한 기분이다.
혼자 그 추억속을 헤매고 있는데,
그 기분을 전혀 모르는 아내가 자꾸 가자고 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계속 생각나는 그 아련한 추억에 실실 웃음이 났다. *^-^*
좀 진정해 보려 하는데
나에게 펌프를 전수해 준, 블로그에 뜬금없는 댓글을 다시는 빽님 생각에 다시 웃음이 샌다.
그나저나 컴퓨터는 어쩐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