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남미

2009_07_18 칠레_산티아고 : 비극의 무대에서 번영의 무대로

에어모세 2009. 7. 28. 10:48


어젯밤 늦게 출발한 버스는
출발할 때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버스를 타려하는데 직원이 우리 버스표가 잘못 되었다며
10분 후 출발하는 다른 버스표로 교환해줬다.
그런데 그 버스표의 좌석표가 중복되어 다시 자리를 배정하느라 또 10분을 지체했다.
어쨌든 버스가 출발하자 우리는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갔을까.. 뭔가 이상해서 잠을 깨니
새벽 3시쯤 되었는데 차가 갓길에 서있다.
차가 이상이 있나본대 정비해서 곧 다시 떠나겠지 생각하고는 다시 잠을 청하는데
승무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승객들이 웅성웅성 하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쉽게 해결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1시간이 좀 지나 새벽 4시가 넘어 다른 버스 두 대가 와서
우리 차의 승객들이 나눠서 갈아타고는 다시 출발했고
산티아고에 아침 8시쯤 도착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두 대에 나눠 타고 오다보니 더 안락했고
버스회사에서 제공하는 아침도 먹고 (물론 음료와 빵 한 조각이지만)
무엇보다도 미리 연락해 둔 숙소에 너무 일찍 도착해서 미안해 할 뻔 했는데
적당한 시간에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남미 처음 도착할 때, 페루 리마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묵은 후, 두번째로 이 곳 산티아고에서 한인 민박을 찾았다.
우리의 의도는 간만에 한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이스터 섬에 관한 정보를 함께 묵고 있는 여행자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왠걸!! 오전에 도착해 보니,
우리 보다 훨씬 어르신들이 우리를 맞아 준다.
사업차 한국에서, 미국에서, 현지에서 모인 한국인 사업가들이다.
여행자는 우리 뿐이고, 우리는 졸지에 이 집에 막내가 되었다.^^


그래도 여러가지 현지 정보들을 얻고 싶어 오자마자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 분들의 계속 쏟아내는 다양한 주제의 얘기들을 우리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자기들의 사업얘기, 여기까지 온 사연들, 한국 사회, 한국 사람 등등
또 어찌나 말씀들을 재밌게 하시는 지...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얻진 못했지만
오랜만에 말 통하는 사람들이 모여 얘기 나누는, 말 편하고 맘 편하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점심까지 함께 먹었다.
원래 우리는 아침, 저녁만 먹게 되어 있다.

 


밥과 김치를 먹은 행복감에 취해 숙소를 나섰다.
숙소 주변은 칠레에서 유명한 의류 도매업체들이 밀집한 곳인데
흡사 한국의 동대문, 남대문 시장과 같은 곳이다.
이 곳은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많고 한인 밀집 지역이기도 하다.

 


남미의 여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가장 중심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가봤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광장을 둘러 싼 건물들의 느낌이 웅장하다.
그 웅장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 갔다.
다른 남미 도시의 대성당과 비교해서
규모면에서나 화려함면에서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광장 한 편에서는
무명 화가들의 손놀림이 바쁘고 다양한 그림들이 시선을 끈다.

 


광장과 잇닿아 있는 보행자 거리인 아후마다 거리(Paseo Ahumada)로 접어 든다.
수많은 이들이 오가고 그들의 시선을 붙잡는 볼거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절대 지루해 할 수 없는 거리다.
한참을 기웃거리며 아후마다를 통과했다.

 

 

 

오른쪽으로 몇 블럭을 지나니
헌법광장과 자유광장 사이에 크고 흰 건물이 있는데
바로 모네다 궁전이다. 대통령이 집무하는 대통령 궁이다.
세계 어느 나라건 대통령이 집무하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 칠레 산티아고의 대통령 궁인 모네다 궁전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린 것은

바로 아옌데 정권과 피노체트의 쿠데타였다.

 


1970년 선거에 의해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는
칠레 최초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하고 야심차게 사회주의 정책을 펼쳐 나갔다.
그러나 자본가 계급과 중산층의 반발,
미국의 방해 공작과 군부의 위협으로 사회가 혼란해지자
1973년 피노체트가 군대를 이끌고 모네다 궁전으로 들이닥쳤다.
모네다 궁전은 화염에 휩싸이고 끝까지 저항하던 아옌데는
'나는 절대 항복하지 않는다' 를 외치며 권총으로 자신의 관자노리를 쏘았다고 한다.

 


우리는 박쥐같은 삶을 살고 있는 지 모른다며
서로 앞다투어 자책했던 페루 쿠스코 사랑채 사장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볼리비아 바예그란데에서 만난 체게바라의 마지막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아옌데의 동상앞에 선 이 모자란 인간은 다시 감회에 젖는다.

 


산티아고 시내를 가로지르는 오히긴스 거리(Av. O'Higgins)를 따라 한참을 걸어 가
산타루시아 언덕(Cerro Santa Lucia)에 올랐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이미 많은 시민들이 이 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산크리스토발 언덕(Cerro San Cristobal)이 서울의 남산이라면
산타루시아 언덕은 낙산공원 쯤 될 것 같다.

 

 


산티아고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도 멋지지만
무엇보다도 동쪽 안데스의 눈덮인 산들이 인상적이다.
운좋게도 겨울철 스모그가 심한 산티아고에서 드물게 맑은 날이다.
마침 해가 기울어 어두어지자 덤으로 야경까지 선사한다.

 

 

 

 


첫날임에도 알차게 돌아 다닌 하루였다.

비록 단 하루였지만 비극의 역사를 딛고 현재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칠레의 활기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밥과 김치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