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7_24 칠레_라파누이 : 오늘의 이동 수단은 두 다리
현관 앞 테이블에서 숙소 주인의 아들인지 조카인지
'끼'라는 꼬마가 스파이더 가면을 만들고 있다.
오리고 자르고 애를 쓰는데 잘 안되는 모양이다.
아내가 도와주려고 다가가자 처음엔 경계하더니
가면이 완성되자 아주 좋아하며 친한 척 한다.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은 전세계 어디서나 동일한 것 같다.
오늘은 날이 맑다.
어제 비가 온 후 개어서 그런 지 더욱 화창하다.
어제 하루 잘 쉬었으니 오늘 또 섬을 돌아 보자.
오늘은 그제 일주하면서 가보지 못한 코스를 가보기로 했다.
아후아키비를 목표로 섬 중심쪽으로 난 길을 따라서 갔다가
돌아올 때는 해안을 따라 난 길로 올 예정이다.
오늘의 이동 수단은 바로 우리의 두 다리이다.
출발은 발걸음 가볍게 나선다.
숙소에서부터 개 한마리가 따라온다.
후쳐내 보지만 한참을 따라오다 어느새 사라졌다.
이상하게 요즘, 개들이 나를 쫓아 따라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몸에서 뭔 냄새가 나나? ㅋㅋ
남미에는 개들이 참 많다.
애완용 개가 아니고 도시던 시골이던 도처에 주인 없는 개들이 돌아 다닌다.
키우던 개들을 그냥 길에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하고
개를 친구처럼 대하는 남미인들의 정서 때문에도 그러한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개들이 사납지 않다는 것이다.
생긴 건 아주 사납게 보이고 덩치가 큰 개도
인간으로부터의 경계심이 없어서 그런지 유순하다 못해 축 늘어져 산다.
아직 개에 물렸다는 여행자는 못봤다.^^
마을을 벗어나니 뜨문 뜨문 집이 있긴 하지만 한적한 초지를 따라 오붓한 길로 접어 들었다.
소와 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푸른 언덕과 푸른 하늘 뭉게구름이 또 하나의 그림이다.
아내와 화음 맞춰 노래를 불렀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 ~ ~ '
'새파란 잔디위에 누워 저높은 하늘을 보면 두둥실 떠가는 구름 한점은 ~ ~ ~ '
어느새 아후아키비(Ahu Akivi)에 도착했다.
아후통가리키에서 본 모아이 만큼의 규모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바다를 향하고 있는 모아이로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근처의 아나테파후(Ana Te Pahu) 동굴이 인상적이다.
동굴안으로 들어가니 제법 큰 동굴이다.
내부에는 사람이 거주했던 흔적들이 남아 있고,
중간에는 위로 뚫려 있어 빛이 들어와 자연 채광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슨 탐험가라도 된 양 동굴 내부를 이리저리 관찰했다.
이제 거리상 반환점을 돌았다.
해안을 따라 난 길로 접어들어 항가로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바다는 여전히 멋있지만 몸은 점점 지쳐간다.
예상한 것보다 시간도 더 걸리고 힘들다.
남들은 렌터카를 타거나
말을 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이들을 보니 무척이나 부럽지만
우리처럼 걸어 다니는 이들을 보며 다시 용기를 얻는다.
저 멀리 항가로아 마을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데
가도 가도 제자리인 듯 쉽게 닿질 않는다.
드디어 항가로아 마을과 맞닿은 아후타하이에 당도했다.
그저께 본 노을빛에 물든 풍경과는 또 다른 분위기다.
숙소에 도착해서 좀 쉬고 있으니
숙소 앞바다에 노을이 물들어 간다.
아후타하이 못지 않은 그림이다.
오늘 하루, 다리도 아프고 몸은 피곤하지만
두 다리로 직접 이스터 섬의 또 다른 부분을 보고 오게 되어
마음만은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