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8_08 아르헨티나_엘찰텐 : 피츠로이의 신비
어제 숙소 주인 어른의 조언에 따라
우리의 짧은 일정을 최대한 알차게 보낼 계획을 짰다.
이 곳 숙소는 현지에서도 인기가 많은 고급 호텔로서
우리나라의 펜션과 같은 형태의 아름다운 통나무집이다.
당연히 고가의 고급 숙소임에도 가난한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곳인데
그 이유는,
지금과 같은 겨울철 비수기에는 배낭여행자들에게 매우 저렴한 요금을 받는다는 것과
이 곳의 주인 어른(사모님)께서,
집떠나와 지친 배낭여행자들에게 마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주인 어른께 따뜻한 정을 듬뿍 느끼고 있다.
첫번째 오늘의 일정은
버스로 세 시간 떨어져 있는 엘찰텐(El Chalten)에 갔다 오는 것이다.
그 곳에서 피츠로이(Fitz Roy) 산을 보기 위함이다.
3,500미터 가까이 되는 산 정상을 오르는 것은 아니고
당일 코스로 가능한 트레킹 코스를 돌아 오는 것이다.
아침 8시, 칼라파테를 출발해 엘찰텐을 향해 가는데
9시가 넘어 10시가 가까이 되자 동이 트기 시작한다.
극지방에 가까운 지역임이 실감난다.
그 어스름 사이로 호수와 눈덮인 산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1시쯤 엘찰텐에 도착했다.
피츠로이 트레킹으로 여름철에는 북적대는 곳이지만
겨울철이라 거의 문을 닫아 적막하기까지 한 마을을 가로 질러
피츠로이를 향해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과 강, 그리고 뒤돌아 바라 본 엘찰텐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지난 여행 중에 가끔 힘겨운 트레킹을 경험한 우리는
파이팅을 외치며 출발했지만 눈쌓인 산을 오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바람은 또 왜 이렇게 심하게 부는 지,
바람에 몸이 휘청거릴 정도이고 나무가지를 스치며 내는 굉음에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을 한국을 생각하니 특별하고도 재밌는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이윽고 피츠로이 산을 올려다 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미리 본 맑은 날의 피츠로이 사진과는 전혀 다르게 구름에 휩싸여 있지만
무언가 또 다른 신비감을 자아낸다.
봉우리 자체도 그러하지만 그 사이 푸르게 보이는 빙하의 모습이 신비감을 더한다.
계속 눈 덮인 길을 따라 산을 오르니
나무 숲 사이 가려져 있던 호수가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트레킹 코스의 반환점인 카프리 호수(Lago Capri) 이다.
부분 부분 얼어붙어 얼음덩어리가 떠 있고
강한 바람에 물결이 일고 그 위로 눈발이 연기처럼 날린다.
병풍처럼 설산이 둘러 서 있고
어느 산 자락에는 푸른 빙하가 마치 흘러 내리는 듯하게 자리 잡고 있다.
순간, 현실 세계라고 믿겨지지가 않는다.
신선이라도 혹은 천사라도 나타날 분위기다.
다른 누군가가 이 곳에 있다면 우리가 신선이나 천사로 보일지도...
신성한 곳에서 몹쓸 생각을 잠깐 해봤다. ㅋㅋㅋ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바람과 매서운 추위에
호수를 바라보며 보내려 했던 낭만적인 점심시간을 포기하고
준비해간 빵과 과일을 입에 물고 돌아섰다.
산은 점점 구름에 짙게 덮여가고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다.
조금 걱정되는 마음에 내려가는 발걸음을 서둘러 재촉한다.
엘찰텐 마을로 돌아오니 오후 4시다.
칼라파테 행 버스는 오후 6시에 출발한다.
유일하게 문을 연, 숙소 겸 카페 겸 버스회사 사무실에서
커피 한 잔으로 몸을 녹이며 버스 시간을 기다린다.
눈은 비로 바뀌고 조금씩 어두워지자,
비를 피해 모여든 여행자들로 점점 채워지는 이 곳 실내가 더욱 아늑하다.
칼라파테 숙소에 돌아왔다. 밤 9시다.
아침에 여행자 한 명이 추가로 온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창 안으로 보니 그 분이 온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봤더니만...
아니.. 이게 누구신가...
칠레 이스터섬에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송작가님 아니신가...
난 너무 반가워서 하마터면 아내가 보는 앞에서 와락 끌어 안을 뻔 했다.^^
주인 어른께서 양고기 요리로 저녁을 차려놓고
모두들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모양이다.
어제 함께 이 곳에 온 커플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주인 어른께서 준비해 주신 식탁에서 감격의 저녁식사를 했고
이어서 방으로 돌아와, 송작가와 재회의 감격은 밤늦게 까지 이어졌다.
칠레 이스터섬에서 한 여름에 만난 우리는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서 한 겨울에 다시 만났다.
한 여름에서 한 겨울까지 단 2주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