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8_17 브라질_상파울로 : 수염을 깎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면도를 하게 된 것이 고등학교 시절 부터이지 싶다.
지금과 달리 그때야 솜털처럼 가늘었지만,
수염이 자라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여드름 자국들...
겁이 많은 나를 위장하기 위해, 험상궂은 인상과 껄렁껄렁한 행동...
도대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ㅋㅋㅋ
그 이후로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면도를 했다.
아버지에게 혼날까봐 주일에 교회가기 전에는 꼭 했으니...
10년 가까이 직장생활 중에는 하루 걸러 면도를 했다.
너무나 귀찮은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여행 와서 불편한 것이 더 많지만 편한 것이 있다면 바로 면도를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수염을 기른 적이 없다.
면도를 안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을 뿐이다.^^
내 기억으로 지난 6월 중순 께 페루 쿠스코에서 마지막으로 면도를 했으니
두 달 정도 되었다.
그동안 상당히 수염히 자랐다.
반응도 제각각이다.
화상통화와 사진을 통해 보신 부모님은 얼른 면도하라고 성화시고
신기한 듯 보는 부류도 있고, 잘 어울린다는 이들도 있다.
현지인들도 처음엔 낯선 동양인으로 대하더니
수염이 덥수룩해진 이후에는 별로 낯설게 대하지 않는다.
나 또한 수염을 통해 현지인과 동화되는 느낌이었다.
오늘, 비장한(?) 마음으로 수염을 깎는다.
브라질 오기 전부터 마음 먹었었다.
친구의 위신도 있고 해서 친구를 아는 주변 분들께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법 시간이 걸렸다.
샤워하고 스킨 로션을 발랐다.
거울을 봤다.
뜨악! 너무 낯설다.
완전 다른 사람이 거울 속에 있는 것 같다.
아내는 더 놀랐다.
낯설어서 가까이 못 오겠다고 물러선다.
얼른 수염 다시 붙이란다. ㅋㅋㅋ
단순히 낯설은 걸 넘어
왜 그렇게 느끼하게 보이는 걸까
나의 원래 모습이 이러했단 말인가
단지 두 달 지났을 뿐인데...
수염이야 다시 자라겠지만
내 이미지는 어쩌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