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9_13 에스토니아_탈린 : 팬케이크와 KGB
동유럽, 게다가 20년 전만 해도 구 소련의 일부였었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활기에 넘쳤다.
물론 그 활기가 자국민으로부터 나온다기 보다는
우리를 포함한 외국인 여행객들로 인해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는 밝은 이미지다.
아름다운 구시가의 모습이 그 이미지를 더 밝게 만들고 있다.
어느 유럽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그리 크지 않은, 걸어서 충분히 돌아다닐 만한 탈린의 구시가를
발 길 닿는 대로 누비고 다닌다.
광장의 노천카페에서 차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고딕 양식의 높은 첨탑을 가진 교회들,
한 골목을 빠져나오면 또 다른 이쁜 골목에 접어 들게 되는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렇게 한참을 돌다, 그다지 눈에 띌 것 없는 한 건물 앞에 멈춰섰다.
화사한 표정을 가진 사람들속에 있다가 갑자기 무뚝뚝한 사람을 만난 듯 했다.
과거 KGB 본부가 있던 건물이다.
현재는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폐쇄적인 권위주의의 상징으로만 남은 채 말없이 서 있다.
불과 20년 전이다.
저 괴물같은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비인격적인 유린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니,
갑자기 (지금은 이름을 바꿨지만) 서울 한복판 남산에 있었다는 안기부가 생각났다.
탈린 구시가의 아름다움에 취해 헤매다니다
또, 예전 KGB 건물 앞에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배가 고파온다.
숙소 직원에게 추천받은 식당으로 갔다.
숙소를 잡고 난 후에는, 항상,
그 숙소의 스탭을 붙들고, KGB 마냥 그 지역의 정보를 캐묻는다.^^
그 중에 가장 유용한 정보는 맛있고 싼 음식점 정보이다.
오늘도 역시나 그 정보를 들고 식당을 찾아갔다.
아주 맛있는 팬케익을 파는 곳이다.
이 곳은 시내 중심가에 있으면서도 관광객은 거의 찾아 볼 수 없고
현지의 젊은이들로 꽉 차 있다.
오히려 우릴 신기한 듯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밖에서 보면 전혀 식당같지 않아서 모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어쨌건 팬케익이 아주 맛있다.
가격 대비로 양도 아주 푸짐하다.
팬케익 식당안에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이 시끌벅적하다.
아주 밝은 표정으로 유쾌한 대화들을 나누고 있다.
몇몇은 온통 힙합스타일로 몸 전체를 꾸몄고
미국 팝 음악 계속 흘러 나오고 있다.
20년 전에는 모두가 KGB의 조사 대상이었을까?
그래도 팬케익의 맛은 똑 같았겠지?
사라진 권위주의의 자리에
미국의 상업주의가 들어와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