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09_18 폴란드_바르샤바 : 회의에 빠지다
어젯밤 9시 경에 우리가 탄,
폴란드 바르샤바행 버스가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출발했다.
정해진 좌석번호가 없이 먼저 자리를 잡으면 자기 자리가 되는
유로라인 버스에 우리는 중간쯤에 앉게 되었는데
뒷좌석에는 리투아니아, 미국, 스페인 등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앉았다.
여러 나라 청년들이 여행 중에 서로 만나,
때로는 노래도 부르고 크게 웃으며 시끌벅적하지만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우리도 함께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져 보였다.
적어도 밤 11시가 넘기 전까지는...
밤이 깊어지자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자정이 가까이 오면서 다른 승객들이 하나 둘 씩 잠을 자려 하는데
이들의 분위기는 식을 줄 모른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승객들도 직접 말은 안하지만 불편한 기색들이 역력하다.
앞에 앉은 한 승객이 참다 못해 좀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했다.
하지만 그때 뿐, 여전히 떠들어댄다.
버스가 어느 한 도시에 정차했을 때,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는지 운전기사가 주의를 줬다.
약간 분위기가 긴장감이 돌았다.
차가 출발하고도 계속 떠들자 도로 한 켠에 차를 세우고 운전기사가 다시 주의를 주자
이 젊은이들도 질세라 뭐라 대꾸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 하는데 다른 승객들이 운전기사를 거들자
이들의 기세가 한 풀 꺾였다.
우리 또한, 말은 통하지 않지만 표정으로 거들었다.^^
그래도 이들은 목소리는 낮췄지만
다른 이들을 비웃 듯 계속 장난치며 밤을 지샜고
우리 또한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잠을 설쳤다.
여행만큼 내공이 쌓인다는 말처럼, 대부분의 여행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고, 무엇 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행 중에 그렇지 못한 여행자들도 가끔 접하게 된다.
통계적으로 가장 심한게 이스라엘 여행자들이다.
들은 얘기로, 이들은 군대를 제대하면 대부분 여행을 하게 된다는데,
군대를 제대한 직후이어서 그런지, 유태인들의 자만에 가까운 자부심 때문인지
여행 중 진상을 부리기로 유명하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남미에서 만난 이스라엘 여행자 중에는 참 괜찮은 친구들도 있었다.
아침 7시에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에잉, 한 시간이 늦은 이 곳은 아침 6시다.
가뜩이나 이른 시간에 어떡할까 걱정인데, 한 시간이 더 일러 졌으니...
일단 터미널 의자에 앉아 쉬면서 숨을 좀 돌린다.
이 시간 터미널에는 여행자와 노숙자들이 대부분이어서
유용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
일단 시내 중심가로 가기로 하고 터미널을 나와
지나 가는 사람들을 붙들고 길을 묻는다.
다행히도 친절한 아저씨 한 분의 설명으로 시내 중심에 있는 중앙역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다음 도착지의 숙소를 인터넷을 통해 예약하면 제일 속편하지만
좀 더 괜찮은(위치, 가격, 편의시설 등등) 숙소를 얻을 수 있을 까 싶어
예약은 안하고 그냥 위치 정보만 준비해서 오는 편이다.
더우기 오늘 같은 이른 시간에는 인포가 문을 열지 않기에
위치 정보만 가지고 숙소를 찾아 헤맨다.
30분 가까이 헤맨 끝에 찾은 호스텔에 방이 없단다.
근처에 다른 호스텔로 갔더니 역시나 방이 없다.
그래도 이 호스텔 스탭은 지도 한 장을 주며 바르샤바 시내 호스텔들을 친절하게 표시해 준다.
빈 몸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 계속 이렇게 다니기란 안되겠다 싶어
길 가 벤치에 짐을 내려놓고 아내가 짐을 지키고 내가 다른 숙소를 알아 보러 다니기로 했다.
지도를 들고 근방의 호스텔, 호텔들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방이 없거나 남은 방은 200즈워티(50유로, 9만원) 이상이다.
바르샤바가 오늘 무슨 날인가... 여태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계속 아내 혼자 있게 하기가 걱정되어 아내 있는 곳으로 돌아와
함께 좀 다니다가 다시 또 혼자 숙소를 찾아 나섰다.
결국, 우리가 처음 도착하여 숙소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한
중앙역 근처에 괜찮은 숙소를 구했다. 진작에 여기부터 올 것을... ㅠ.ㅜ
아내에게로 돌아와 짐을 가지고 숙소로 왔다.
체크인이 오후 5시 이기에 짐만 맡기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다. 장장 4시간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그래도 힘을 내어,
바르샤바에 왔으니 꼭 보고 가려했던 쇼팽을 제일 처음 찾아 갔으나,
공사중이다. 맥이 풀린다...
쇼팽의 심장을 보관하고 있다는 성십자가 교회에 들러 사진을 찍었지만
쇼팽뮤지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또 한명의 폴란드의 유명인사, 코페르니쿠스 동상도 둘러보고
재미난 퍼포먼스가 벌어지기도 하고
유럽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기로 소문난 바르샤바의 이 곳 저 곳을 둘러 보았지만
지친 몸과, 여행의 회의가 기웃거리는 내 마음을 달래 주지는 못했다.
마치 시골에서 서울에 상경한 듯
발트3국과는 달리 바르샤바는 대도시의 위용과 유럽의 낭만적 풍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피곤하다.
어제 잠도 편히 못 잤고, 오늘 오전 내내 헤매고 다녔으니...
몸이 지쳐 있으니 여행의 재미가 나질 않는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고,
아내가 집에 가고 싶다고 무심코 뱉는 말이,
오늘 만큼은 우스갯 소리로 들리지 않고 마음 깊이 와닿는다.
대단한 결단을 하고 결행한 일이건만
매일 숙소잡으려고 헤매고,
나라와 도시로 이동하는데 고생하고,
한푼 아껴보려다 물가 타령만 하고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뭘까?
이 다시 오기 힘든 이 기회를 우리는 잘 누리고 있는 걸까?
내 고개는, 아름다운 바르샤바 시내의 모습을 향하는 게 아니고
길바닥에 떨구어 뜨려져 느닷없는 상념이 꼬리를 문다.
까르푸에 들러 찬거리를 사서 숙소로 갔다.
부엌에서 저녁을 해먹는데
폴란드 친구가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무언가를 계속 얘기하고자 한다.
여행과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인 듯 하다.
나는 각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아. 너와 한국인들의 관심은 뭐니?
( 나와 한국인들의 관심은 뭘까? )
발트 3국도 갔다 왔다며? 서로 어떤 차이를 느꼈니?
( 이틀씩 수도만 머무르다 왔는데 그 차이를 감히 논할 수 있을까? )
너 여행 많이 했다니 부럽다.
(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그런 여행을 하고 있는 걸까? )
다른 때 같았으면, 버벅거리면서라도 내가 먼저 계속 대화를 나누려 했겠지만
오늘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대충 얘기를 마무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 숙소는 참 재미난 곳이다.
최고의 테러리스트는 미국이라는 포스터와
부처님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투숙객 뿐만 아니라 이 곳 숙소도 다양한 마인드를 가진 이들에 의해 꾸며진 것 같다.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지만 관심을 갖고 생각에 잠기기에는 몸이 너무 피곤하다.
씻고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내 바로 옆 침대의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서양여자에게서 심한 냄새가 난다.
냄새 뿐 아니라 연신 기침을 해댄다.
내 윗층 침대의 아내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방을 나가 거실에서 배회한다.
난 하는 수 없지 하고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려 했지만
아내는 결국에 스탭에게 말을 했고, 스탭은 그 서양여자에게 목욕할 것을 권했다.
오늘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난관들...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생각에 잠겼다.
과연, 우리의 여행은 무슨 의미일까?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다.
의미는 내일 생각하자^^
이렇게 우리 여행의 또 다른 하루가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