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10_23 스위스 : 아내에게 한 수 배우다.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고 있는 중에,
한 곳에 오래 머문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기차만 타고 다닌다는 건 여행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단순 이동일 뿐..
적절하게 계획을 세워 알찬 여행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저 상투적이다.
적절하다는 게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으니..
유럽에서 만나는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약간의 반감이 있어 왔다.
소위 배낭여행을 한다고들 하는데,
한인 숙소에만 머물고, 자기들끼리 몰려 다니며 틀에 박힌 일정을 보내고 쇼핑으로 마무리 하는...
여행이라기 보다는 배낭관광이라 불리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어떤 친구는 자신의 여행의 경력과 내공을 과시하기도 한다.
( 이후 우리도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세계일주 얘기는 누가 질문하기 전까지는 절대 먼저 꺼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아내와 대화를 할 때, 내 생각을 얘기하면
꼭 그렇게만 생각할 필요가 있냐며, 다들 각 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라며, 나의 편견을 지적한다.
여행을 한다는 것이, 누구나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큰 의미를 가지고 떠난 것이다.
그 거리와 시간에 관계없이 말이다.
그러니 어떤 기준을 두고 그것에 비추어, 잘 된 여행, 잘 못된 여행이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도 별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도 하고
그동안에 한인숙소와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와 비교가 안될 정도의 진정한 여행의 내공을 가진 이들이 아주 많았다.
부끄럽게도, 나의 까칠하고 철없는 생각의 편협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말았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내가 하면 여행이고 남이 하면 관광이라는 나의 교만과 다름없는 생각을 깨우친다.
아내에게 한 수 배웠다.
스위스에서 3일을 보냈다.
유레일패스를 들고 3일을 한 곳에 있었어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좋았다.
그렇기에 체크아웃을 꽉 채워 숙소를 나와
라우터브루넨을 떠난다.
비가 추적 추적 내린다.
인터라켄에서 다시 루째른 행 기차를 타고 가는데,
달리는 기차안에서는 사진에 도저히 담아지지가 않는,
차창밖으로 비와 안개 그리고 호수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루째른에 도착하니 여전히 날씨가 안좋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면 나름의 분위기가 있는 법이지만
우리의 애초 계획은,
루째른에서 배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가, 리기 산에 오른 후, 반대방향으로 내려가 쮜리히로 갈 생각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라우터브루넨을 비롯한 베르네 지역이 알프스의 품에 안겨있다면
리기에서는 알프스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물론, 날씨가 좋다면...
계획을 수정했다.
오늘은 순수한 기차여행만 하기로 했다.
비록 짧은 다리지만, 편안히 1등석 기차에 다리뻗고 앉아 책도 보며
스위스 이곳 저곳을 기차로 누비며, 펼쳐지는 스위스 풍경을 창을 통해 편안히 감상했다.
먼저 루째른을 가볍게 돌아보고
베른, 로잔, 제네바까지 갔다가 반대로 쮜리히로 왔다.
편안한 감상을 마치고 이제는 불편한 야간이동을 해야 한다.^^
오늘밤 쮜리히에 서 있는 우리는, 내일 아침엔 오스트리아 빈에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