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11_18 튀니지_튀니스 : 머리는 유럽, 가슴은 아랍, 발은 아프리카에
아침에 서둘러 런던 개트윅 공항으로 갔다.
다행히 별 큰 문제없이 튀니지행 비행기에 오르는 가 싶었는데
공항 검색대에서 목욕용품 몇 개가 걸려 빼앗기고 말았다.
그간, 몇번 저가항공으로 유럽내에서 이동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에 우리가 미처 꼼꼼하게 신경을 못 썼다.
또, 마지막에 비행기 탑승하러 들어가는 순간에는,
우리의 보딩패스를 훑어 보던 직원이 우리의 원래 비행기 티켓을 보여 달란다.
나.. 원.. 참..
우리는 비행기 티켓이 없다.
눈에 보이는 종이 티켓이 없다는 말이다.
이티켓(e-ticket)이라고 해서 전산상으로만 관리되어 여권을 보여주면 알아서 처리된다.
그 직원이 여기 저기 연락해 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 없다고 해서 통과하긴 했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고.. 더구나 시스템이 발달한 영국에서...
사실, 영국은 미국과 더불어 주요 테러 대상국이니,
검색과 통과수속을 까다롭게 하는 게 이해가 간다.
도버해협을 건너
프랑스 상공을 가로질러
지중해를 넘어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도착했다.
지리적으로는 대륙구분 상, 아프리카에 위치해 있으므로
우리는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에 발 딛은 것이다.
한편,
튀니지는 지중해 남쪽 이탈리아 시칠리 섬과 불과 80여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랍과 부대끼며 이루어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대에는, 기원전 7-8세기 부터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카르타고라는 나라가 세워져,
한니발 장군의 이야기로 익히 알려진 것처럼 로마를 위협하는 강대한 문명을 꽃피웠고
기원전 1세기 쯤엔,
로마가 카르타고를 무너뜨리고 로마 문명을 이 곳에 세웠다.
그 이후엔,
중세의 막을 연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의 지배를 받았고
연이어 아랍에 의한 지배로 아랍문화가 지금까지 뿌리내려 있고,
근데에 들어와서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기도 했다.
이렇듯 한번도 토착민족에 의해 다스려 지지 못한,
즉 외세에 의해 지배되어 온 슬픈 역사의 땅이기도 하다.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지리적인 관점에서 튀니지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있다.
바로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발은 아프리카에' 라는 말이다.
지리적으로 위로는 유럽, 아래로는 아프리카와 닿아 있고
오랜 아랍의 지배를 통해, 언어와 문화, 종교 등의 관점에서 아랍의 일원이 되었다.
사하라 윗쪽 아프리카 북부의 나라들이 모두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사하라 사막은 아래쪽 아프리카와는 교류를 힘들게 했지만
지중해라고 하는 바다는 유럽과 아랍과의 치열한 역사를 만들게 했던 것이다.
미리 예약한 숙소를 찾아간다.
공항 인포에서 10디나르(만원) 이하로 요금이 나올 것이라 했건만
우리가 타고 온 택시의 미터기는 17디나르가 표시되었다.
처음이라 모든게 낯설고 어리둥절하여 그냥 주고 보냈지만
분명 뭔가 석연치가 않다.
우리가 미리 조회해 본 바,
가장 저렴한 숙소이면서, 이름도 공식 유스호스텔이어서 괜찮다 싶었는데
우리가 유럽을 기준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게 낡은 시설에, 쾌쾌하고 써금써금한 방, 청결치 못한 화장실 등등
거리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여서
불결하고, 시끄럽고,
튀니지의 역사적인 얘기로 거창하게 서두를 시작했지만
우리에게는 웬지,
다시 남미로 돌아 온 듯한 느낌이다.
첫날 잠깐 튀니스를 돌아 본 느낌도
중동에 첫발을 내딛음에 따른 색다름과
다양한 문화의 공존이 우리의 이목을 끈다.
청바지를 입고 히잡을 두른 여인들과,
양복과 전통의상을 입은 이들이 거리를 메운다.
모스크와 성당이 함께 서있고
전통적인 아랍문화와 현대적인 서양문화가 뒤섞여 있다.
이렇게 중동과 유럽이 상존하는 이 곳에
낯선 동양인인 우리만이 이방인이다.
여행이라는 총체적인 경험은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기능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다.
코의 향내로, 피부의 느낌으로, 전신이 조금씩 나눠서 그 느낌과 기억을 지니게 된다.
처음 밟은 튀니지, 그 수도 튀니스의 골목마다 중동의 향이 있다.
중동의 특산 향수 말고도, 시샤(물담배)의 연기 외에도 말이다.
우리가 몸으로 전혀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울 수 밖에 없는 환경의, 그 어떤 낯설음 대한 향내...
외관을 유럽풍으로 꾸몄다 하더라도
현대적인 구조물이라도, 하다못해 성당을 바라보고 있을찌라도
그 중동의 향내가 코와 피부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