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_11_28 시리아_다마스커스 : 다메섹에서의 회심
함께 숙소를 공유하긴 하지만
하루 종일 붙어 다닐 수는 없기에 오늘은 각자 나선다.
이샤는 우리가 혹시나 집에 못 찾아 올까봐
종이에 아랍어로 이 근처의 유명한 함만(목욕탕) 이름과 학교 이름을 종이에 적어줬다.
길을 잃을 경우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 종이를 보여주라고 하면서...
여행을 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지도 보고 길찾기에 선수가 된 우리지만,
그의 깊은 배려심에 또 한번 감동했다.
먼저 신시가지를 한참을 헤매며 현금인출기를 찾아 다녔다.
지도에 표기되어 있는 시내 각처에 흩어져 있는 현금인출 기계를 찾아 시도해 보지만
내 카드로는 돈이 인출이 되지 않는다.
점심때가 지나 허기질 때 쯤, 예닐곱번째 찾은 기계에서 가까스로 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찾은 돈으로 과자도 사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다.
과자는 너무 달고, 아이스크림은 마치 떡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 익숙지 않음으로 인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 먹다보니 나름 맛있다.
점심을 이렇게 대충 떼우고는 구시가지를 돌아 다녔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찌나 사람이 많은 지, 길을 지나다니기조차 힘들다.
그래도 사람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특별히 아내는 중동산 실크 스카프에 자꾸 눈이 가는 것 같다.
내가 하나 사자고 해도, 돌아다니다 보면 더 싼게 있을거라며 계속 흥정만 하고는 돌아선다.
구시가 한쪽, 기독교 지구에 들어서니 교회가 보인다.
교인이 얼마나 될 지, 내부는 어떨 지, 궁금하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자세한 정보는 알 길은 없지만
모스크와 사이 좋게 지내길 바란다.^^
한쪽에서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이동식 놀이기구가
주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를 발견한 이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내는 환호성 대신에 우리에게 인사말을 외친다.
정겨운 모습이고 반가운 인사다.
계속 길을 가니 골목에서는 아이들의 총싸움 놀이가 한창이다.
우리도 명절때 아이들이 장난감 총이나 폭죽놀이를 하긴 하지만
분쟁지역에서 멀지 않고, 전쟁을 경험한 지 오래지 않은 이 곳에서의 전쟁놀이란
참으로 뜨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명절은 가족들이 모여 양고기를 먹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더니
곳곳에 양을 잡은 흔적들이 보인다.
나는 신기한 듯 구경하며 가는데 아내는 비위 상한다며 쳐다도 못보고 발을 재촉한다.
오늘도 많이 걸었고
입에 당기는 것이 없어 대충 점심을 떼우고
숙소로 돌아 오는 중에는 양을 도살한 흔적을 보고 나서는
아내가 머리가 아프다며 컨디션이 급 안 좋아짐을 호소했다.
또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깊은 한숨에 실어 뱉는다.
숙소에 도착하니
이샤 부부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머리도 아프고 컨디션이 안좋아 저녁을 함께 못하겠다고 거듭 미안함을 전했다.
이샤 부부는 저녁식사를 위해 나가고
우리 둘만이 덩그러니 천정을 보고 누워 쉬는데
난 긴 생각에 잠겼다.
영국에서부터 여행에 대한 의지와 욕심이 상당히 작아졌다.
중동에 와서 겪는 불편함들이 다른 때 보다 훨씬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겪는 것이 이전만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나도 집에 가고 싶다.
늦은 밤, 아내에게 나의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아내가 얼마나 좋아라 하는 지... ㅋㅋㅋ
물론 비행일정 변경이라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긴 하지만
서로 상의 끝에,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최초 계획대로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포기할 곳은 포기해야 하는데
이왕 중동에 발 딛었으니 중동은 예정대로 하되 좀 서둘러 돌고,
비행여정 상, 들를 수 밖에 없는
태국 방콕과 홍콩을 제외한 전체 아시아 일정을 포기하고
2009년도 올해 안으로 한국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출발 전부터 방문 1순위였던 인도와
새해를 보내려 했던 안나푸르나의 네팔과
그밖에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을 포기하게 되어 많이 아쉽지만
한편, 만약에 우리가 다시 여행을 계획한다면
상대적으로 타 지역보다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둘러 북쪽으로 올라가자.
우리의 남은 원월드 비행 일정 변경도 의뢰해야 하고
터키에서 이집트로 가는 항공편도 알아봐야 한다.
갑자기 약해졌던 여행의 의지가 다시 솟구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