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중동

2009_12_02 터키_안타키아 : 입영전야

에어모세 2010. 1. 4. 17:45

 

짐을 싸서 숙소에 두고 알레포를 조금 더 둘러보러 나왔다.

정오 쯤 터키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에 멀리는 못 가고

우리는 다시 시장으로 향했다.

 

 

맛있는 빵과 과자를 아침으로 사먹고 동시에 점심으로 준비해서

숙소에 맡긴 짐을 들고 오늘은 터키로 넘어 간다.

 

 

 

터키는 지난번 유럽을 여행할 때 들르려 했었다.

하지만, 터키 인접국인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돌아 보고는, 터키로 들어가지 않고 방향을 돌려 중부 유럽으로 갔었다.

당시 일정이 빠듯하다는 판단하에, 터키는 중동 여행 일정에서 기회를 도모하기로 했던 것이다.

 

유럽여행을 하는 많은 이들이 터키를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지리적으로 유럽대륙에 붙어 있고

유럽을 접한 후 느끼는 터키의 느낌이 중동의 문화로 인해 색다르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로 인해

터키는 이제 유럽여행의 한 부분이 되었다.

 

사실,

터키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중동에 가깝지만

현재는 유럽이 되고 싶어 안절부절 하는 듯 하다.

 

 

 

정오가 조금 넘어 출발한 버스는 1시간 여 후, 시리아와 터키의 국경에 도착했다.

역시나 시리아 출국세(인당 12달러 정도)를 내고

사람은 특별한 절차없이 터키로 간단하게 넘어 왔지만

각 사람들의 짐과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검역과 검색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시리아에서 터키로 넘어가는 사람들은 짐을 엄청 싸가지고 가는 것 같다.

터키가 유럽이랑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물가가 싸지만

다른 중동국가와 비교해서는 물가가 상당히 비싸단다.

 

 

 

국경을 넘어 터키 땅을 계속 달려가는데

황량한 사막이 이어졌던 시리아와는 사뭇 다르다.

나무들이 서 있고, 푸른 빛의 초지들이 눈에 띈다.

 

터키가 경제적으로 다른 중동에 비해 좀 더 낫다고 하더니

농업환경도 좀 더 나은 것 같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성서에 등장하는 안디옥이다.

현재는 안타키아(Antakya) 혹은 하타이(Hatay) 라고 불린다.

 

이 곳은 시리아 국경과 가까운 터키 최남단의 주요 도시로서

터키 각 지로 이동하는 주요 버스 노선들이 있다.

 

오후 4시 반쯤 안타키아에 도착했다.

오후 12시 반쯤 출발해서 4시간 쯤 걸렸지만

국경에서 1시간 정도 지체한 것을 감안하면 3시간 정도 걸린 셈이니,

시리아 알레포와 터키의 안타키아가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를 돌아보고 이 곳 안타키아에 머물기에는 시간이 없어

바로, 카파도키아 지역을 가기 위해 표를 알아 보니,

오늘밤 야간 버스를 타고 카이세리아에 내일 아침 도착하게 되면

바로 괴레메로 가는 버스와 연결되어 진다고 한다.

 

터키의 버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얘길 익히 들었다.

 

 

 

환전을 하고서

버스 표를 예매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아내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버스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대합실에서 머무르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오더니 버스 승강장으로 갔다.

조금 후에는 음악 소리가 나고, 버스 터미널 전체가 들썩 거렸다.

 

호기심이 발동해 승강장으로 가보니

버스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고

북을 둥둥 쳐대고, 흡사 우리의 태평소와 모습도 소리도 비슷한 피리를 불며

사람들이 춤을 추고, 또 그 주위를 많은 이들이 에워 싸고 구경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 광경을 호기심있게 보고 있으니

한 젊은 친구가 이 상황을 설명해 주고 간다.

 

친구가 내일 아침 군에 입대하게 되어

오늘밤 고향을 떠나며 환송하는 것이란다.

 

 

안타키아를 출발해 내일 아침 카파도키아 지역의 카이세리아에 도착하는 버스가 출발했다.

우리를 태운 이 버스는 자정이 될 때 까지 계속해서 가는 도중 마을의 터미널에 들러 사람을 내리고 태웠는데

엄청난 입대 환송인파가 터미널마다 가득했다.

실로 대단한 광경이었다.

 

한국처럼 입대 일자가 전국적으로 정해져 있어 동시에 많은 젊은이들이 입대하는 모양이다.

 

입대하는 청년의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슬픈 표정으로 눈물짓고 있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친구들은 매우 자랑스러워 한다.

본인도 무언가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한국사회도 터키와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의무복무를 해야한다.

전쟁과 군비등 국가의 대내외적인 차원의 논의와는 다른 부분에서

한국의 남자들에게 군대는 각 자의 개인 삶의 중요한 절차가 되기도 하고 추억이 되기도 한다.

 

나또한 그 18년 전의 추억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18년 전 성탄절 전 날, 가족과 지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입대하고

3일 동안 멀리서 계속 울려대는 캐롤을 들으며 수락산 너머 고향을 그리워했던 아련함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게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입대하던 날의 감정도, 28개월의 군생활도 아니고

제대하던 날의 그 가슴벅참이었다.

 

통과의례를 마쳤다는 후련함,

내 모든 근육이 불끈거리며 몸에 붙은 에너지,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

 

 

남은 대학생활과 백수 시절, 그리고 직장생활을 겪으며

스멀 스멀 그 자신감의 기운은 사라져 감에 따라

그 자리에는 타성이라는 놈이 자리잡았고, 반복되는 짜증과 지루함의 현실이 비집고 들어 앉아 있었다.

 

그 현실에 치일 수록 제대하던 날의 벅찬 감정이 더 강하게 기억되는 지도 모르겠다.

 

 

 

최백호 아저씨는 " 아 ~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 " 했고,

전인권 형님과 김광석 형님은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 " 라고 했다.

 

아내와 함께 술잔을 들고 외치고 싶은 밤이건만,

 

시끌벅적한 환송이 끝나고 모두들 잠이 든 버스는

추억의 밤을 가로 질러 또 다른 현실 아침을 향해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