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산행 (2005년 10월)
10월 11일.
무슨 신성한 곳에라도 가는 양, 아침부터 목욕재계를 했다.
면도도 하고 깔끔을 떨다 차 시간이 임박했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의정부 터미널로 헐레벌떡 향했고, 간신히 9시 30분 속초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가 퇴계원을 지나니 불암산이 보인다. 산에 가는 길이어서 인지 지나치는 산들이 친근해 보인다.
양평 접어들자 남한강이 여유롭다. 길가의 가을꽃들도 정겹다.
오늘은 러브호텔이나 맛집식당보다 산과 강, 꽃들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졸다 눈을 뜨니 어느새 강원도 길이다.
1시 조금 넘어 백담사 입구(용대리)에서 내렸다.
이름이 좋아 들어간 평화식당에서 시골반찬 위주의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꺼억~ 트림 한번 해주고 바로 출발했다.
이제 3일 동안 곡기를 못 먹는다 생각하니 더 맛있었다.
마을 길을 따라 10여분 가니 매표소와 백담사 들어가는 셔틀버스 승강장이 보인다.
문화재관리비가 포함된 국립공원 입장료 3200원, 셔틀버스 편도 2000원 지불하고 버스에 올랐다.
산행이 목적이 아니고 관광이 목적인 아줌마 아저씨들은 입장료에다가 왕복 버스요금 까지 지불하니,
백담사만 갔다 오는데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저마다 한마디씩 거든다.
어쨌거나 나의 게으른 산행의 시작인 백담계곡부터 설악의 위용이 대단하다.
< 백담사 극락보전 >
백담사에 가면 여러 가지 감회가 떠오를 줄 알았는데,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좋기만 했다.
그래도 두환 아저씨 생각이 어찌 안 나리오..
무슨 고행처럼 지냈다는 곳이 이렇게 좋은 곳이라니.. 이래저래 얄밉다.
두환 아저씨 기거하던 곳에 안내 팻말이 있어 그 방이 전시되고, 사람들은 신기한 듯 몰려 구경한다.
그를 기리는 걸까? 관광객을 끌기 위한 수완일까?
이제는 백담사에서 만해 한용운 보다 두환 아저씨를 떠올리게 되니, 또 얄밉다.
발걸음을 돌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 수렴동 계곡 >
넓지만 깊지 않은 계곡과 멀리 보이는 고봉들,
점점 색깔이 달라져 가는 이 수렴동 계곡을 따라 점점 내설악의 품에 안겨 들어간다. 정말 좋다.
배낭을 내리고 바위에 앉았다. 구름 없는 맑고 파란 하늘에 햇빛이 쏟아진다. 산들바람에 숲의 잎들이 재잘거린다.
아.. 이 상투적인 표현들.. 그러나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란 말인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이전까지 먹었던 사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달고 시원하다.
가지고 간 책을 펼쳤다. 책은 연민과 측은지심, 소박과 청빈을 나에게 얘기하고 있다.
연민과 측은지심은 나를 정화시키고, 소박과 청빈은 오히려 내 마음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어느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산은 도시보다 밤이 서둘러 온다. 서두른 밤보다 먼저 수렴동 산장에 도착했다.
자리를 배정받고 짐을 풀었는데, 통나무를 엮어 만든 산장은 겉보기와는 달리 안에는 쾌쾌한 냄새가 진동한다.
내 뒤로 도착한 사람들의 땀냄새, 발냄새까지 더해진다. 아주 불편한 잠자리가 될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 아닌가. 남들은 땀 흘려 등산하고 난 뭐 날아서 왔나?
이렇게 생각하니 쾌적하진 않아도 잘 만한 잠자리로 생각되었다.
백담사에서 그리 소란하던 관광객들은 다 돌아가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가 싶었는데,
하나 둘 속속 산장을 채운다. 생각보단 춥지 않을 것 같다.
잠시 산장 밖으로 나왔다. 첩첩산중이라 좁을 수 밖에 없는 하늘에 별이 쏟아진다.
서울의 밤과 냄새도 다르다. 이크, 화장실 옆이다..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한다.
잠이 안 온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 수렴동 산장>
10월 12일.
아침에 일어나 다시 채비를 차리고, 더 깊은 설악의 품으로 안겨 들어갔다.
완만한 구곡담 계곡을 따라 계속 오른다.
구곡담 계곡은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굽이치며 절경을 이뤄내고 있었다.
계속 오르자 고봉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중턱의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뽐내고 있다.
배터리를 아껴야 되는데도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지만,
과연 이 절경을 얼마만큼이나 담을 수 있을까?
카메라가 카피를 제대로 하던 못하던 실체는 분명 이렇게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실체들을 망막 속에, 기억 속에 차곡차곡 담는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리라.
실체보다는 카피된 것에, 그리고 그 카피가 확대 재생산해내는 이미지에 열광하고 더 가치를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본질은 외면한 채, 현상에 더 가치를 두고 그 현상에만 몰두하고 있는 우리네 삶이 아닌가 싶다.
‘이미지 보다는 실체’, ‘현상보다는 본질’을 보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해본다.
< 구곡담 계곡 >
완만했던 산행 길이 갑자기 가파라지며. 쭈욱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다.
휴~~, 가다 쉬다 반복하며 오르니 땀이 온몸을 흠뻑 적신다.
완만한 길에선 여러 생각이 많더니만 몸이 힘들어지니까 잡생각이 없어진다.
단순해진다. 가벼워진다.
나는 생각만 가볍지 몸은 천근만근이나 나를 추월해서 걸음을 재촉하여 가는 젊은 스님은 몸마저 가볍다. 승복의 펄럭임이 사뿐하다.
‘헥헥’거리며 계속 오르는데, 아스라히 불경소리, 목탁소리, 풍경소리가 들려온다.
봉정암이 가까워 온 것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런 암자가 있다니, 게다가 규모도 제법 큰 암자가 말이다.
사리탑이 있는 옆 봉우리에 오르니 단풍 숲에 둘러 쌓인 봉정암이 수려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리탑에 합장하며 절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간절하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가 지나 온 내설악의 전경이 펼쳐진다.
용아장성이 계곡을 감싸아 우뚝 서 있고, 능선 너머로 동해바다가 살짝 보인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 온 나에게는 가슴이 확 뚫리는 느낌을 준다. 시원하다.
오세암과 대청봉의 갈림길 표지판을 보고
다음엔 꼭 오세암에 가보리라 마음먹고 오세암의 전설을 떠올리며 대청봉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 봉정암 사리탑 >
< 봉정암 >
< 용아장성 >
< 외설악 방향 >
소청산장에 도착하니 이거.. 뭐.. 봉정암의 절경과 비할 바 아닌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용아장성의 위용은 한층 더 거세고, 동해바다가 더 넓게 보인다.
벌써부터 곡기를 요구하는 내 배를 달래며, 조촐한 점심(한끼니 : 사과1, 쵸코바1, 오이1)을 먹고,
조금 더 오르니 소청산이다.
이 곳의 풍경은 한술 더떠 봉정암, 소청산장의 그것과 비할 바 아니다.
( 이런!! 앞서 장황한 표현은 다 해버려서 뭐라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감정과 표현의 절제가 필요했던 건데..
오버쟁이 장모세.. 쩝.. 그렇담 다른 사람의 표현을 빌려 보자... )
지나가는 아주머니 일행이 “정말 정말 감동적이야!! 눈물이 나오려고 해!!” 하며 감탄과 흥분의 찬사를 계속 쏟아낸다.
나도 눈물이 나오려 한다. “나도 하얀 쌀밥에 고기반찬 먹고 싶다!!!”
수렴동 계곡과 구곡담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행이 설악의 품에 내가 안겨있는 느낌이었다면,
이 곳에서는 설악의 머리와 어깨 위에 내가 무등 태워진 느낌이었다.
위로는 대청봉과 중청봉이 손에 잡힐 듯 훤히 보이고,
동쪽으로는 공룡능선과 화채능선이 뻗어 있는데 그 너머로 동해바다가 펼쳐 있고,
서쪽으로는 내설악의 중후한 자태가 봉정암이나 소청산장에서 보다 더욱 절경을 이루고 있고,
북쪽으로는 구비구비 아스라히 금강산 줄기의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미시령을 넘을 때마다 그 웅장함을 과시하던 울산바위가 아주 조그맣게 내려다 보이니,
그 옆의 점 같이 보이는 대학 다닐 때 MT갔었던 대명콘도와 더불어 귀엽기까지 하다.
날씨는 왜 이렇게 좋은 건지.. 구비구비 내륙 쪽의 지평선과 확 트인 바다의 수평선이 선명하다.
지리산 천황봉에 갔을 때, 천황봉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 곳 설악산에서는 내가 덕을 좀 쌓아서 이 좋은 날씨를 허락했나 보다. ㅋㅋㅋ
난 지금 한 시간을 넘게 멍하니 내려다 보고만 있다.
< 마등령 방향 >
< 화채능선 방향 >
여기서 밤을 지샐 수는 없는 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일의 천불동 계곡에서 펼쳐질 장관을 기대하며 설악동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하염없이 내려가는 동안,
공룡능선에 가까워지면서 웅장한 바위들의 위엄이 느껴지고 외설악의 절경은 계속 내 시야에 펼쳐진다.
오후 5시가 가까워졌을 때, 희운각 산장에 도착했다.
이 곳은 어제의 수렴동 산장에 비하면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자리를 배정받고 여기 저기서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난 오기 전에 생각하기를, 짐도 줄이고, 단 몇 일만 있을 테니까 식사도 간편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과 몇 개, 오이 몇 개, 초코바 몇 개가 내가 준비해 간 식량 전부였다.
버너, 코펠, 각종 음식 재료를 꺼내어 식사준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게 무슨 짓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틀째인 지금은 그들이 몹시 부럽다.
쌀밥에 찌개, 심지어 고기까지 구워 먹는 사람도 있으니,
정말 내 ‘장’이 ‘환장’(?)을 하는 것 같았다. 참자, 참자, 주기도문을 외워본다.
< 희운각 산장 >
6시가 넘으니 이내 어두워졌다. 산장 안은 사람들로 빼곡하다.
오늘밤에 살을 맞대고 잘 수 밖에 없는 옆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다.
산사람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아저씨 둘과 여자친구를 억지로 데리고 왔다가 여자친구의 힘든 투정에 힘들어 하는 남자,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서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난 봄부터 지리산을 시작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다는 아저씨.
이 아저씨는 여승이 되신 홀어머니를 모시고 결혼도 하지 않고 살다가 어머니가 몇 년 전 돌아가시자 너무 슬퍼서 산을 찾기 시작했다는데,
산이 그 외로움을 달래줬을 뿐 아니라, 새로운 평안을 찾게 되었다 한다.
그 아저씨의 미소가 얼마나 천진하시던지...
또 다른 한 아저씨의 무용담이 이어진다.
암벽등반 하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겨울산에서 조난당하기도 했는데,
그 전 해에 같은 장소에서 산짐승을 잡아먹고 받은 벌이라 생각된다며, 지금은 산행 중에 조금만 벌레도 밟지 않는다고 한다.
또 산행 중에 백발의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지금 생각하니 산신령이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두 연인과 나는 두 아저씨의 무용담에 연신 감탄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나중에 내가 이 두 아저씨를 산신령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을 얘기 나누다 갑자기 관심이 나에게 쏠렸다.
“백두대간 종주하세요?”, “아니요”, “산 잘 타시나 봐요?”, “아니요”,
그럼 어떤 사연으로 혼자 산행을 하냐고 묻길래, “전 그냥 왔는데요..” 짧게 답하고 머리만 긁적거렸다.
9시가 되어 산장 안의 등도 꺼지고 완전히 캄캄해지자 자리에 누웠다.
똑바로 누워있기조차 힘들다. 모로 누웠다. 이러다 생리적인 신호라도 올라치면 대략 난감이다.
몸은 무지 피곤한데 또 잠이 안 온다. 겨우 잠이 들고 잠깐 자다 깬 것 같은데 새벽 4시다.
도저히 답답함을 못 참아 자는 사람들을 비집고 산장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너무 상쾌하다. 별이 쏟아질 듯 하다.
오리온 자리가 보인다. 가운데 3태성이 선명하다.
서울에서 봤을 때는, 말이 3태성이지 2개만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문득 이런 얘기가 생각났다.
어떤 남녀가 밤에 데이트를 하는데,
남자 왈, “저기 오리온 자리 가운데 별을 3태성이라고 해”, 여자 왈, “별이 2개뿐인데”,
그러자 남자 왈, “나머지 별 하나는 바로 너야!” 큭큭큭...
이런 70년대식 느끼한 레퍼토리도 이 곳에선 안 통할 정도로 별이 많고 밝다.
이리 무수한 별들이 나를 항상 내려다 보고 있었다니... 이제 어두운 밤에도 착하게 살아야겠다.
그나저나 무지 춥다. 다시 잠자리로 들어 가는 것 또한 난감이다.
10월 13일.
아침이 밝았다. 사람들이 또 무슨 진수성찬을 차리려는지 부산하다.
내 ‘장’이 또 ‘환장’하지 않도록 미련 없이 바로 산장을 나왔다.
이미 환하게 동은 텄으나 해는 아직 얼굴을 보이지 않았는데,
조금 내려가니 화채능선 위로 해가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자, 햇빛 몇 줄기가 반대편 능선으로 치닫는다.
글자 그대로 ‘눈부신’ 광경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니, 해가 완전히 화채능선 위로 얼굴을 드러냈다.
벌떡 일어서서 팔과 가슴을 쫙 펴고 해의 정기를 받았다.
난 찬송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 "
지나가는 아저씨가 헛기침을 킁킁 하신다. 쭈뼛쭈뼛 얼른 다시 발길을 돌렸다.
햇빛에 공룡능선도 구름을 살짝 걸친 채로 환히 드러났다.
< 공룡능선 >
불쌍한 내 다리를 다독거리며 한참을 내려갔다.
드디어 천불동 계곡이다.
이 코스는 수 년 사이에 대여섯 번은 왔었는데, 올 때 마다 감동한다.
호젓한 길을 따라 가다 철제 난간의 코너를 도는 순간,
그 어떤 수식어도 생각나지 않았다. 절정이다. 초절정이다.
내 안의 잡스러움이 한번에 빠져나가는 듯, 큰 한숨이 쉬어지고 그냥 그대로 얼어 붙었다.
다시 찬송가를 우렁차게 불렀다. (사실 마음속으로 불렀다... 나의 이 소심함이여…)
양폭산장까지 이어지는 동안 계속 초절정이다.
이제 형용사나 감탄사는 그만 자제해야겠다.
궁금한 분들께는, 백 아니 천분의 일도 표현 못하는 사진으로나마 대신 해야겠다.
< 천불동 계곡 >
양폭산장에서 오련폭포까지 내려가는 동안도 절정이다.
오련폭포에서 비선대까지도 절정이다. 이 곳은 준(?)절정이다.
나와 반대로 올라 가는 사람들이 이 '준절정'을 보며 탄성을 지르면서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난 속으로 ‘조금만 힘을 내세요, 여긴 준절정에 불과해요. 좀 더 오르면 절정, 초절정에 다다른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비선대가 가까워질 때쯤,
장군봉의 금강굴이 바라 보이는 계곡 한 켠에 배낭을 내리고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 식량을 비우고는 양말을 벗고 발을 담궜다. 3일만에 처음 벗었다.
머리와 얼굴을 물 속에 푹 담궜다. 3일만에 처음으로 물을 묻혔다. 너무했나?
3일동안 완전히 자연과 동화(?)된 생활이었으니...
아무튼 너무너무 상쾌하다.
비누와 샴푸로 벗기지 못하는 묵은 때까지도 씻겨진 것 같다.
< 장군봉과 금강굴 >
< 비선대 >
비선대에 도착하니 물소리에 사람들 소리까지 더해졌다.
관광 온 아줌마 아저씨들의 남도 사투리가 무성했고
수학여행 온 학생들은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옷 스타일에 대한 얘기와 연예인 뒷얘기를 재잘거리고 있었다.
비로소 설악의 품에서 빠져나와 속세(?)에 이른 듯 했다.
완전히 내려와 소공원에 도착했다.
케이블카 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고,
이미 꽉 차버린 주차장으로 들어 가려는 관광버스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 소공원 케이블카 >
< 해맞이 공원 >
버스를 타고 설악동 입구에 내렸다.
해맞이 공원에서 동해바다가 나를 맞았다. 뿌듯하다.
얼른 집에 가자. 쌀밥에 고기 먹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