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남미

2009_06_23 페루_쿠스코 : 그 때 그 사람

에어모세 2009. 6. 29. 07:24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나에게 그런 특별한 사람은 없다.

아니 비가 오면 부모님 계시는 송추농원이 걱정되어 생각이 나긴 한다.^^

 

 

가끔, 하룻밤 만원도 안되는 쾌쾌한 호스텔의 골방에서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여러 가지 생각에 뒤척일 때면,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던 친구, 선후배는 물론 내 주변에 마음 따뜻한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하나 떠오르며 웃음 짓곤 한다.

 

어떤 동기에 의해 누군가가 생각나는 건 당연히 일이겠는데

여행 와서 유독 자주 생각나는 그 때 그 사람이 있다.

물론 양가 부모님과 가족들, 그리고 미국서 함께 생활했던 동생 가족이 제일 많이 생각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말이다.

 

두 명의 사람이, 여행중인 나의 머리 속에 자주 떠올려지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렇게 각별히 친한 사이(?)였었던가 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자주 생각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ㅋㅋ

 

 

한 명은, 한국 떠나기 며칠 전 인사드리러 찾아 갔던 선배 형인데

그 형을 만나고 돌아 오는 길에, 나는 약을 한 보따리 싸서 들고 집으로 왔다.

그 형은 이비인후과 의사이다.

1년 동안 필요할 지 모르는 각종 상비약을 체크해서 각각 처방전을 써주고

한꺼번에 많은 약이라 약사가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직접 약국에 데리고 가서

친동생이라고 소개하고 약을 타게 끔 해줬다.

 

약 꾸러미는 항상 짐 한 켠에 있다.

볼 때 마다 생각나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이상하다 싶으면 생각난다.

약 꾸러미는 단순히 상비약이 아니고 선배 형의 정성 꾸러미이다.

 

 

또 한명은 동갑내기 친구이다.

아주 오래 전 부터 친구였던 것은 아니고 4-5년 전 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나이들 수록 서로 친구 되기가 쉽지 않으련만 이상하게도 이 친구는 나에게 참 좋은 친구가 되어 줬다.

 

한국 떠나기 며칠 전, 친한 친구 선후배 몇 명이 모여 나를 환송해 주는 자리에서

이 친구가 사진기를 그것도 나 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좋아 보이는 사진기를 나에게 선물로 줬다.

아예 날 주려고 작정하고 가지고 왔는 지, 사진 찍으러 가지고 나왔다가 즉흥적으로 나에게 준건 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하고 엉겁결에 받았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솔직이 처음에는

짐이 하나 늘어서 부담이 되었다. 그리고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아내와 나는 사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뿐 더러 취미도 없었다.

여행 출발할 때도 서로 가지고 있었던 조그만 디카 하나씩만 가지고 가려 했었다.

 

어쨌건 난 여행 중에 항상 이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난 그냥 보이는 대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셔터를 누를 뿐이지만

아내가 말하길 폼은 그럴 듯 하단다. 역시 카메라가 그럴 듯 하니 폼까지 달리 보이나 보다.^^

 

당연히 사진기를 항상 몸에 지니고 찍어대니

그 친구 또한 항상 생각날 수 밖에... ㅋㅋ

하지만 분명한 것은 단순히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디카 보다 성능이 좋은 카메라를 줘서 고마운 마음에서가 아니다.

그는 가족만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건실한 친구인데, 사진을 찍는 유일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내가 여행지에서 너무나 멋진 광경을 볼 때 마다

그 친구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 친구라면 어떤 각도로 어떤 자세로 이 광경을 사진에 담을까..

하는 생각들을 항상 하곤 하기 때문이다.

 

 

어제 마추픽추에서 내가 너무 흥분했는지

반팔만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감기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 왔다.

요즘 감기는 단순히 나만 겪는 감기가 아니다.

더구나 낼모레 볼리비아로 넘어 가는 문제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고민 끝에 한국에 있는 선배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에 연락없다가 나 아쉬울 때 연락해서 미안한 마음이지만

형은 형답게 반갑게 받아줬다.

이내 어떤 어떤 약을 어떻게 어떻게 먹으라고 알려줬다.

 

항상 생각만 하던 사람과 직접 통화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생각난 김에 사진기를 준 친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서로 너무나 반가워 했다.

 

 

어디 이 두 명 뿐이랴...

꼭 비가 오지 않아도 생각나는 나의 그 때 그 사람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