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뉴스 근교에 버스로 1시간 거리쯤 되는 트라카이라는 곳이 있다.
호수를 끼고 있는 한적하고 자그마한 마을인데
그 호수 위에 중세 시대에 지어진 성으로 유명한 곳이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후
폴란드 바르샤바행 야간 버스를 예매하고
바로 트라카이로 향했다.
듣던 대로 아담하고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마을이다.
빌뉴스에서 밤새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가 쏟아져 걱정했지만
오늘은 다행히도 맑게 개어, 호수에 햇살이 반짝거려 눈이 부실 정도다.
그 호수위에 자리잡고 있는 성이 나타나자
어디서 몰려 들었는 지 한 무리의 관광객들 또한 나타나 북적거린다.
성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장료를 내야 하자
밖에서 둘러 보면 되지 굳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필요까지 있냐고 아내가 반문한다.
빌뉴스로 다시 돌아가 맡긴 짐을 찾아 가지고
바르샤바행 버스 시간에 맞춰 가려면 시간도 넉넉치는 못해서
그냥 성 밖으로 호수를 따라 한바퀴 돌아봤다.
결혼 전, 한국에 있을 때 아내는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리 빠듯한 생활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을 만나면 본인이 돈을 내는 경우도 많았고
자신을 꾸미는 데에 아끼고 산 것 같지도 않았다.
들은 얘기로 별명이 박씨티(city) 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와서 아내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하다.
숙소를 정할 때도 음식을 사 먹을 때도
요모 조모 따져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 최선을 다한다.
남미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유럽에 오니 참 이쁘고 세련된 사람들이 많다.
더욱이 유럽여행 온 한국의 젊은 처자들, 얼마나 잘 꾸미고 다니는 지...
같은 여자로서 아내도 그런 욕심이 왜 안들겠는가? '박씨티'였다는데^^
이쁜 옷, 명품 가방과 신발, 세련된 선글래스와 악세사리 등등
다니는 곳마다 많은 유혹이 있었을텐데 오히려 더 짠순이가 되어 가고 있다.
여행출발할 때 챙겨온 옷들이 점점 낡아 가고 심지어 무릎이 찢어지기도 했지만
꿋꿋하게 입고 다닌다.
오늘도 도시락을 준비해서 비닐봉투에 넣어 하루종일 덜렁덜렁 들고 다녔다.
그리고 아무데서건 벤치에 앉아 꺼내어 먹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촌스럽다고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박씨티 여사,
철철 넘치는 촌티를 마다하지 않고, 유럽의 이쁜 도시들을 누비고 다닌다.
빌뉴스로 돌아왔다.
혹시 야간 버스에서 배고플까 싶어 주전부리를 사는데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꽤 먼거리에 있는 슈퍼마켓까지 갔다왔다.
어둑 어둑 해진 길을 따라
다시 무거운 짐을 앞뒤로 메고 길을 나선다.
아내의 뒷모습이 짜-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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