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유럽

2009_09_19 폴란드_바르샤바 : 대략 난감? 완전 낭패!

에어모세 2009. 9. 28. 03:55


어제 잘 때만 해도 우리 부부와 냄새나는 서양여자 이렇게 셋이었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 났더니 우리방 8개의 침대에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었다.
구석 한 침대에선 일본인이 자고 일어나 인사를 한다.
자신은 노래 부르는 가수이고, 이 곳 어느 클럽에 공연왔다가 오늘 떠난다며,
굉장히 반가워 했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우리로서는 조금 의아하게도 그 짧은 아침 시간에 엉겁결에 아주 친한 사이가 된 것 같다.


냄새나던 서양여자분도 먼저 굿모닝 하며 인사를 한다.
사실 우리때문에 기분 나쁠 수도 있었을텐데
먼저 밝게 인사를 해주니 우리 마음도 풀린다.


어제 대화를 나눴던 폴란드 친구들은,
음악에 관심있으면 가보라며 음악 콘서트 정보를 전해주고는
좋은 하루 보내고 저녁에 만나자며 웃으며 인사하고 나갔다.


내가 어제 미리 예약은 안했지만 하루 더 머무를 수 있는 지를 물어봤었는데,
주인인지 스텝인지, 상냥한 폴란드 청년은,
미안하지만 오늘은 예약이 꽉 차서 하루 더 머무를 수 없게 됐다며
다른 호스텔을 안내해 주고 자신의 이름으로 예약까지 해줬다.


좀 번거롭게 되긴 했지만
그의 친절에 감동했다.
그리고 숙소에서 만난 다른 이들로 인해 기분 좋은 하루를 열게 되었다.


모두가 우리의 어제의 심정을 알고서 기분전환을 시켜주려는 듯,
아니면 오늘이 내 생일인 줄을 알고 그러는 듯,
아니면 내일이 우리 부부의 1주년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려는 듯,
암튼 어제의 가라앉은 맘이 다시 추스려지게 되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리고 내일은 결혼 1주년이다.
그동안 생일을 특별히 챙겨 본 적이 없다.
잊어버리고 지내다가 가족들이 알려 주면 그제서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랬으니 여행와서도 특별한 계획은 없다.
그저 어제와 같은 하루를 보낼 뿐이다.
하지만 어제같은 감정의 경험을 겪고나니 생각을 좀 바꿔서,
어제와 다른 하루를 맞고 싶다.


오늘은 뭔가를 먹거나 보거나 하게 되면
모든 게 내 생일을 맞이하여 하게 되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특별한 것을 하게 되진 않겠지만
어제와 다른 생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오전에 나와 짐을 다른 숙소로 옮기고 시내로 나왔다.
점심 식사로 케밥을 사먹었다.
아니 오늘은 생일 기념으로 케밥을 사먹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동시에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하나인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로 여행왔다.

 

 

 

 

 

 

 


생일을 맞이하여 멋드러진 노천까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유럽 도시 거리의 낭만에 취해본다.

 

 

 


생일을 맞이하여 다양한 이벤트가 한창이다.
군인복장을 한 이들이 옛날 전투장면을 재연하고
군악대가 연주를 하며 우리앞을 행진한다.
거리의 악사들이 앞다투어 우리를 위한 노래를 부르고
댄서들은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우리는 이들에게 고마움의 박수를 보내며
우리를 위한 이벤트를 맘껏 즐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와 같은 결혼 기념일을 가지려는 신랑 신부들의 웨딩촬영이 한창이다.
ㅋㅋㅋ ㅋㅋㅋ

 

 

 

 


이렇게 혼자만의 행복한 착각에 빠져 거리를 헤매고 있는데...
속이 불편하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온다.
괜찮아 질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 다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일단 아내에게 통보를 했다.
일단 참는데 까지는 참는데 도저히 안되겠으면
할 수 없지만 가까운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겠노라 하고 숙소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심했다가 괜찮았다가를 반복하는데 어느 순간엔 정말 식은땀이 날 정도이다.


지나가는 도중 근처 까페에 들어가려다 메뉴판에 가격을 보고는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다독이며 발을 돌리기를 여러 번,
드디어 숙소가 있는 블럭에 접어드는 길의 코너를 돌았다.


그런데 이 길가엔 흔하디 흔한 카페나 식당이 없다.
심리적으로 더 불안한 상황이 되다보니
그 압박이 더욱 심해져 온다.


오... 나의 괄약근이여...
조금만 정말 조금만 참아주오!!
주기도문을 외어 본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노라 기도도 해본다.


아~ 정말이지...
인간이라는게,
규범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이라는 게,
이렇게 거추장스러울 수가 없다.


앗! 저기 카페가 하나 보였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최선의 힘을 다해 그 까페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내의 한 마디...
이 집 조금 비싸 보이는데 조금만 어떻게 더 참을 수 없을까...


아... 이 배신감이여...
남편의 고통도 돈 몇 푼에 져버리고 마는구나
누가 그 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저기 숙소 건물이 보인다.
아내가 얼른 먼저 가서 엘리베이터를 잡아 놓고 기다렸고
엘리베이터에 내려서는 앞이 노랗게만 보이는 길을 따라 내달렸다.


휴 ~ ~ ~
일찍이 선인들이 해우소(解憂所)라 칭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나도 ...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저녁이 되어
아침에 폴란드 친구가 추천해 준 음악회에 갔다.
유럽에서 음악회를 보는 건 꼭 해 볼 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지라 고민되는 일 중의 하나이다.
그 고민을 덜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동유럽에서 음악회를 경험하는 것이다.


예전 사회주의 시절 동구권에서는 음악교육을 많이 시켜
훌륭한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수요가 어찌됐건 배출된 음악인들이 많아도 기초적인 생활보장은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경쟁사회가 되다보니
과잉 음악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그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꼭 음악 전문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성당이나 야외 무대에서의 공연이 자주 열리게 된다.


그러니 서유럽에서보다 동유럽에서
적은 비용으로도 수준 높은 음악회를 경험할 기회가 많은 것이다.

 

오늘은 바르샤바 시에서 주최하는 공식 음악회이고
게다가 그 이름도 유명한 런던 심포니의 연주이다.
잔뜩 기대를 하고 공연장을 물어 물어 찾아갔다.

 

 


아... 이럴 수가...
세상에 이런 음악이...
나도 음악 좀 듣는 다고 들어 왔건만...


쇼팽, 모짜르트는 아니더라도
클래식 음악을 기대했건만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였던 것이다.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음악을 전공한 아내마저도 혀를 내두른다.
나에게는, 현대음악이 아니라 미래의 음악이고
지구의 음악이 아니라 외계의 음악이나 다름없다.


예상을 완전히 깨는 코드 진행과 화음,
기상천외한 연주 방법,
소프라노 가수가 랩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기괴한 소리를 낼 때는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계속되는 난감함을 넘어 낭패가 아닐 수 없는 하루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이 음악회를 소개해 준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어땠냐며 소감을 묻는다.
잘 이해할 순 없었지만 아주 좋은 경험을 덕분에 했다고
인사치례를 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일부러 지하철 한 역 더 가서 내려
낮에 힘들게 힘들게 엉거주춤 걷던 길을 따라 편안히 걸어왔다.
그저 노랗게만 보였던 이 길이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었었단 말이지...


모든 아름다움은 다양한 상황에서 나오지만
평화로움 속에서만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