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2월 23일자
[임의진의 시골편지] 세가지: 선물
어린 동자 스님이 사는 절집에도 산타가 굴뚝을 타고 넘어가 선물을 놓고 간다.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만 선물을 안 주시는 것이지 종교 집안을 따져 묻지 않아. 예수님도 부처님도 선지자 마호메트님도 옹졸하기 짝이 없는 진실한 사람 타령, 제 식구 감싸기 그런 거 일체 모르신다.
새누리당 당원용 잠바를 얻어 입으셨나? 아니면 적기가 새겨진 조선노동당 당원용 잠바인가. 산타 할아버지는 어떤 소속인지 모르겠지만 빨강색 유니폼을 입으시고 휴전선을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드셔. 종북인가 종친인가 빠알간 코를 밝힌 루돌프 사슴을 몰고 밤하늘을 이랴자랴. 특별하게 생겨먹어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고 웃었지만 루돌프는 산타의 썰매를 끄는 몸이시다. 천대받고 멸시받는 이들의 머리 위에 하늘의 축복이 임하길.
산타의 원조 동방박사는 세 가지 선물을 아기 예수 머리맡에 놓고 갔다지. 황금은 왕좌를 상징하고 유황은 신성한 생명을, 몰약은 시신의 방부 처리제인데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아기 예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도 세 가지 선물을 받았다는 얘기다. 당신은 왕만큼 귀한 이 나라의 주인이며 안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신성한 목숨. 또 당신의 죽음을 우리는 헛되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아. 메리 크리스마스 아니 ‘쏘리 크리스마스’.
친구들에게 가끔 선물을 받는다. 포도주스가 아니라 포도주를 좋아하다보니 병나발을 불기도 해. 산부인과 의사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무자식 상팔자, 치과의사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한의사는 밥이 보약이라는 말이란다. 목사는 그럼 무슨 말이 듣기 싫을까. 나는 ‘목사님은 술 안 드시죠?’ 이 따위 말. 한국의 보수교회는 해괴한 전통이 있어 한 잔의 술조차 끔찍이 싫어하면서 대신 돈을 엄청 탐하고 좋아해. 난 세 가지 선물이 몽땅 와인이면 좋겠어. 잠시 전쟁을 멈추고, 정쟁도 멈추고 휴전! 건배사를 나누며 평화와 공생을 기원하자. 목마른 아이들에게 우물을 파주고, 외식이 일상인 거지들에겐 집밥도 좀 드시게 하자.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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