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늦은 시간까지
여행이야기로 지새웠건만
아침에 일어나니 남은 건 숙취 뿐 무슨 얘기를 했는 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주 요긴한 정보도 많았었는데...
하는 수 없다. 우리가 몸으로 부딪쳐 알아가는 수 밖에...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꾸린다.
역시나 무거운 이 눔의 짐들 ㅠ.ㅜ
이까(Ica)행 버스를 탔다.
페루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5시간 걸려 이까에 도착했다.
이까에 온 이유는 바로 근방에 있는 와까치나(Huacachina)에 가기 위해서다.
페루는 크게 서부 해안, 중부 안데스 산지, 동부 아마존 밀림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부 해안에 가까운 지역은 사막기후이다.
바로 와까치나가 사막의 오아시스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택시를 타고 와까치나로 들어가는데
난생 처음보는 사막지형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페루에 와서 처음보는게 너무 많다.^^
오아시스를 돌아 바르코라는 호스텔로 갔다.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는 더블룸을 40솔 달란다.
깎아보려고 계속 흥정을 해보지만 페루 아가씨가 여간 깐깐한 게 아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른 곳을 알아보기가 너무 힘들어 그냥 묵기로 했다.
마침 같은 숙소에 한국인 여대생 여행자들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혼자 여행하는 걸로 치면 여자 비율이 남자보다 많다는 통계가 있는데
역시 한국 여성들은 대단하다.
방에 짐을 풀고 나오니 4시다.
로비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우리보고 투어 안가냐고 묻는다.
바로 그 유명한 버기 투어다. 바로 접수하고 올라탔다.
와까치나에 나이든 양반들은 휴양하러 오지만
젊은이들은 버기 투어를 하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기는 다인승 오토바이라고나 할까?
그걸 타고 사막을 질주하는 기분이란... 정말 표현하기 힘든 쾌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장 터프한 운전자를 만났다.
놀이 동산의 롤러코스터 이상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사막을 달리는 그 자체의 스릴도 스릴이지만
처음 경험한 사막이라고 하는 환경의 신비함까지 더해,
출발할 때의 두려움은 어디 가버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바람을 가른다. 최고조의 기분이다.
그렇게 미친듯 질주하던 버기가
Dune 이라고 하는 사막의 모래언덕에 멈추어 섰다.
샌드 보딩을 위해서다.
수명이 다한 스노우보드를 모아 놓았는데
그걸 썰매처럼 타고 모래언덕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네 번의 샌드보딩을 했는데
갈수록 점점 높은 모래언덕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난이도를 높여 갔다.
보기엔 눈썰매와 다를 바 없지만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재미는 기대 이상이다.
온 얼굴과 옷 사이로 모래가 들어왔지만 아이들처럼 마냥 즐겁다.
1시간이 좀 넘게 사막을 가르며 달렸던 버기가 이번에는
대부분 그늘로 접어든 사막 중간에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언덕으로 갔다.
저 멀리 또 다른 모래 언덕으로 해가 저물고 있다.
사막에서의 일몰이라......
그렇게 환호성 지르며 즐기던 모든 일행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며 말없이 석양을 바라본다.
커플들은 서로 어깨를 기대고, 어떤 이들은 반쯤 누워서, 어떤 이들은 묵묵히 서서,
숭고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해가 완전히 저 너머 모래 언덕으로 넘어가자
어둑해진 사막에서 버기 운전자의 마지막 선물인 듯
마지막 광란의 질주를 선사하고 와까치나 오아시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받이에 섰다.
야경을 보라고 하는 것이다.
버기투어가 오후 4시에 시작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일몰과 야경을 포함시키기 위한 것이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식사 이후로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버기 투어의 스릴이 허기까지 잊게 해준 것 같다.
모래 범벅인데도 씻지도 않고 오아시스 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밤에 느끼는 오아시스의 정취 또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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