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7월5일 볼리비아 바예그란데.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험난한 하루가 될 걸 예상하면서도 맘이 가뿐하다.
소풍을 앞둔 어린 아이처럼 맘이 설렌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아침에...
운해가 넘실거리는 이게라 로 향하는 길,
지리산이 연상되고 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 ~ ~'
가슴이 벅차 오른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이게라에서 체게바라의 자취를 본다.
사진을 마구 찍어댄다.
이걸 어떻게 사진에 남겨 자랑을 해야하나
누구 누구에게 자랑하면 부러워 하겠지?
계속 이 생각 뿐이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이게라 기념관에서 기부를 하라길래
10볼리비아노를 적어 내고 잔돈이 없어 100볼리비아노를 건넸더니
너네는 부부이니 20이라며 80볼리비아노를 거슬러 준다.
알겠다며 받았지만 은근히 짜증난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체의 마지막 전투지인 동시에 생포 당한 장소인
츄로 계곡에 내려갔다.
아내는 힘들어서 차에 남기로 했다.
뭐가 힘드냐고 여행하는 자세가 안되어 있다고 한 소리 했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서양에서 온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 왠지 폼 날 것 같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또 자랑할 생각을 했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이 친구들이 이 곳에 온 느낌을 묻는다. 더구나 남한에서 왔으면서 말이다.
옳거니, 예상했던 질문이다.
생각해 두었던 답변을 늘어 놓았다.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쳐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아무도 이 뿌듯한 상황을 봐주지 않은 게 안타깝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계곡을 거슬러 차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숨이 턱까지 차고 너무 너무 힘들다.
기념관에서 체게바라 사진이나 찍어 두면 될 것을,
힘들게 땀 빼면서 괜히 내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함께 츄로 계곡에 내려가 안내를 해준 현지인이 돈을 달란다.
사전에 전혀 얘기되지 않은 거라고 따졌다.
계속 실랑이 하기 뭐해 반만 쥐어 줬다.
친절한 척 잘해주다 어떻게 하면 돈을 뜯어낼까 궁리하는 인간들에게 환멸을 느낀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바예그란데 돌아오는 길에 계속 기분이 나쁘다.
사소한 말을 구실삼아 아내에게 화풀이 한다.
종종 나는 당사자에겐 별 말 못하고 애꿎은 아내에게 화풀이 한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바예그란데의 체의 흔적을 찾아간다.
아무리 기분 안 좋아도 사진은 찍어야지
괜시리 비장한 표정도 지어보고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도 지어본다.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가는 중에...
체게바라를 좋아하면 왠지 멋있어 보일 것 같다.
멋있어 보일 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로
예전에 빨간 겉표지에 두꺼운 체게바라 평전을 끼고 다니며 읽었다.
체게바라가 무슨 일을 했던, 어떻게 살아던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체게바라의 흔적을 찾아 사진을 찍어 두었으니 난 멋있어 보일거야.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갔다 와서...
사르트르는 체게바라를 20세기에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했다.
그 완전한 인간의 최후의 여정을
모자라디 모자란 인간 하나가 어슬렁 어슬렁
체게바라의 여정을 따라 갔다 왔다... ...
-----------------------------------------------------------------
원래는 오늘 수크레로 가고 싶었다.
지도상 산타크루스에서 수크레 중간 쯤에 바예그란데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산타크루스에서 바예그란데를 들렀으니 수크레로 가는 것이 루트 상 효율적이다.
하지만 교통편이 없다. 버스 정기 노선이 없을 뿐더러
중간 중간 어떻게 어떻게 갈아타면 된다는 설명을 대충 들었지만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시 산타크루스로 돌아 가기로 했다.
거기서 바로 수크레로 갈 것이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러 나갔다.
저 버스가 과연 7시간 비포장 도로를 달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차는 매우 낡아 덜컹거리고 좌석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먼지가 풀풀 난다.
짐은 버스 지붕에 가득 싣는데 과연 7시간을 잘 버티고 가줄 지 걱정이다.
또 다시 흙먼지를 자욱하게 날리며 버스가 달린다.
심하게 덜컹거린다.
처음엔 엉덩이가 아프더니 나중에 감각이 없을 정도다.
열려진 창문으로 먼지가 들어와 차 안이 뿌옇게 되어 아내와 난 손수건으로 얼굴을 막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뭐가 그리 좋은 지 시끌벅적 대화를 나눈다.
우리는 그저 꾹 참고 시간만 가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우리에게 고통뿐인 이 버스는 이 곳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좀 더 큰 도시로 볼 일을 보러 가고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필요한 물건을 사러 가고
가족 혹은 연인 끼리 나들이를 가게 해주는 고마운 수단이니
우리가 좀 불결하고 불편하다고 인상을 찌푸리기가 미안하다.
바로 체 게바라가 그렇게나 사랑했던 남미 인민들의 모습이고 삶이다.
중간에 타이어가 펑크나 타이어를 갈고, 또 어딘가에서 점심을 먹고
아침 8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4시가 넘어 산타크루스에 도착했다.
바로 버스 터미널로 가서 수크레 행 버스를 알아 봤다.
이런... 이미 출발했거나 5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는데
8시간을 버스 타고 와서 바로 다시 16시간 버스를 탈 자신이 없었다.
내일 오후 5시 버스를 예매하고 며칠 전 묵었던 숙소로 향했다.
'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 > 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_07_08 볼리비아_수크레 : 미리 보는 유럽 (0) | 2009.07.16 |
---|---|
2009_07_07 볼리비아_산타크루스 : 시어머니 말 한마디에 (0) | 2009.07.16 |
2009_07_05 볼리비아_바예그란데 : Ruta del Che Guevara (0) | 2009.07.10 |
2009_07_04 볼리비아_바예그란데 : 체 게바라를 만나러 가는 길 (0) | 2009.07.09 |
2009_07_03 볼리비아_산타크루스 : 또 다른 볼리비아 (0) | 2009.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