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섯 명은 렌트카 사무실로 향했다.
어제 우리가 알아 본 바로는 3도어 4륜구동이 하루에 3만에서 4만 사이였는데
25,000페소(약 50달러)에 렌트했다. 5명이니까 각 5,000페소 씩 냈다.
확실히 현지인이나 다름없는 칠레 친구들이 흥정을 하니까 조금 더 싸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암튼 각자 렌트했을 때 보다 확실히 경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서로 서로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되었다.
자, 출발이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이스터 섬 일주 투어일 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꼭 제주도 신혼여행같은 생각이 든다.
짖꿎은 친구들이 따라와 함께 하는 신혼여행...^^
동쪽 해안을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섬을 돌아 볼 예정이다.
동쪽 해안 중간 중간에 쓰러진 모아이 유적에 들렀다.
모아이의 제작부터 모아이가 쓰러지게 된 이유 등 많은 추측들이 있어 왔지만
정확한 사료들이 남아있지 않고 고유의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이들의 명맥이 끊어져
아직도 불가사의로 남아 있다고 한다.
모아이 자체도 신비하지만 섬의 해안도 신비하고 아름답다.
함께 동행한 한국인 여행자는 사진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사진기를 다루는 기술부터, 사진기가 향하는 시선까지,
그냥 보이는 대로 마구 눌러대는 나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의 눈에는 사진작가 선생님이시다. 송작가님... ㅋㅋ
송작가님으로부터 사진에 대한 특강을 짧게 듣고서는
실습을 위해 나는 사진찍기에 바쁘고,
송작가와 아내는 어느새 친해져 언니 동생하며 붙어 다닌다.
한국에서 만났더라면 하루 사이에 이렇게 되긴 힘들텐데
서로 낯선 곳에서 만나 여행이라는 교감을 나눔으로써 친밀함이 커지는 것 같다.
더구나 남미에 도착해서부터 이 곳 까지의 루트가 비슷하여
지나온 곳에서의 경험담을 주고 받으니 더욱 그러하다.
크리스토발과 호세, 칠레에서 온 두 친구들은
칠레 남쪽 파타고니아 지방에 산다는데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도 익히 그 지역에 대해 들었는데 이 친구들 또한 아름다운 곳이라고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착하고 잘 생긴 미남 미녀다.
사진을 찍어 놓고 우리와 비교해 보니 완전 모델들이다.
라노라라쿠(Rano Raraku)에 당도했다.
입장하기 전에 준비해 간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아침에 간단히 만든 핫도그, 과일, 과자 등등
소풍 온 느낌으로 먹으니 맛있고 재밌다.
라노라라쿠는 산 전체가 모아이 제작 터이다.
이 산의 돌을 깎아 모아이를 만들어 섬 각지로 운반한 것으로 보인다.
완성된 모아이와 작업 중이었던 모아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맑은 햇살을 받고 있는 모아이가 어떻게 보면 신비스럽고 어떻게 보면 귀엽다^^
언덕을 돌아가니 저 건너편 바닷가
아후통가리키의 15개 모아이가 바다를 뒤로하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산 정상에 오르니 화산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자그마한 호수를 이루고 있다.
호수와 갈대숲과 둘러싸고 있는 언덕이 평화스럽게 햇살을 받고있다.
다시 차를 몰아 아후통가리키(Ahu Tongariki)로 갔다.
라노라라쿠에서 내려다 볼 때 보다 가까이서 보니 훨씬 크다.
원래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엎어져 있던 모아이였는데
1992년에 일본의 원조로 모아이를 세워 놓았다고 한다.
남미 전체가 그렇지만 이 곳 또한 일본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남미에선 동양인을 보면 일본인이냐고 먼저 물어 볼 정도로 일본에 대해 친근할 뿐만 아니라
일본에 대한 이미지와 일본인에 대한 대접이 다른 걸 보면
남미 문화재 복원에 일본의 엄청난 기여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일본 관광객이 소비하고 가는 돈도 무시 못한다.
남미 관광산업의 성과는 일본 관광객 수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가로아 마을 중앙에 있는 무슨 관청에는 칠레 국기와 일본 일장기가 동시에 걸려 있다.
아후통가리키의 모아이를 보니
제일 먼저 서태지가 생각났다.
모아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를 이스터 섬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이 곳의 모습들이 뮤직비디오에 잘 담겨 있다.
내가 사진을 수없이 찍어댄다 해도
그 뮤직비디오 한 편 보는 게 이스터 섬을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서태지의 뮤직비디오는 이스터 섬을 한국에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나 또한 이것을 보고 이전부터 품고 있던 이스터 섬에 대한 동경을 더 키우게 되었다.
계속해서 차를 몰아
만지면 힘이 솟는다는 돌, 테피토쿠라(Te Pito Kura)를 한번 만져주고
다음 코스인 아나케나 해변(Playa de Anakena)으로 갔다.
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이 자그마한 해변은
익히 그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아름다운 해변이다.
보통 자동차나 모터바이크 혹은 자전거를 렌트해서 섬일주를 하는데
모두가 이 곳에서 쉬어 간다.
크리스토발은 신나서 옷을 훌러덩 벗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우리도 마음은 그러고 싶지만 그냥 신발벗고 발만 담근다.
하늘, 태양, 바다, 파도, 모래 그리고 비키니 입은 세뇨리따^^
문명의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낙원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계속해서 걸으며 낙원의 행복과 여유를 만끽한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바헤 해안(Playa de Ovahe)을 잠깐 들른 후,
섬 가운데를 가로 질러 항가로아로 돌아 왔다.
마지막 코스로 석양을 보기 위함이다.
항가로아 마을 북쪽 끝에 위치한 아후타하이(Ahu Tahai)로 갔다.
바다 저편 수평선에 노을이 물들어 가고
그 노을빛을 받은 모아이의 실루엣이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인간이 도저히 만들 수 없는 그림...
숙소로 돌아 온 우리는 바로 저녁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준비한 재료라고 해봐야 쌀과 라면이 전부이지만 우리로서는 진수성찬이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도 맛있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이 또한 예술이다.
내일 떠나야 하는 송작가는 이스터에서의 마지막 밤이 아깝다.
우리 셋은 모처럼 듣는 한국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여행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로 밤이 깊어 가는 줄을 모른다.
오늘밤엔 파도소리와 더불어 수많은 별들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이스터 섬이 가져다 준 행복은,
아후통카리키의 장엄한 모아이에서
아나케나의 빛나는 해변에서
아후타하이의 아름다운 노을에서,
조촐하지만 우리에겐 풍성하기만 했던 저녁 식탁위에도
새롭게 만난 좋은 친구와의 즐거운 수다로 까지 이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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