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통의 여행자들이 들르는 곳들은 대충 다 둘러 보았다.
하지만 이스터섬에 머물면서 생각해 보니
모아이가 있는 유적지가 이스터섬의 여행포인트가 아닌 것 같다.
이스터 섬의 여행 포인트는 바로 섬 자체이다.
성수기라 불리는 한 여름에는 분위기가 어떤 지 모르겠는데
맑디 맑고 평화로운 이 섬에 지금 머무르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맑으면 맑은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하늘, 구름, 바다, 파도 모두가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고
나도 함께 그 풍경을 이루며 여행자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든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이 마을에 딱 한 곳 있다는 교회로 갔다.
카톨릭 교회인지라 미사의 형식에 서툴고 더구나 언어 또한 이해할 수 없으니
그저 눈치껏 옆사람을 따라 미사에 참여한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특별히 다른 지는 모르겠는데,
노래의 선율이 어딘지 모르게 폴로네시아의 토속적인 느낌이 느껴진다.
유럽의 교회가 근엄하고 진지하다면
남미의 교회는 자유분방하고 남미 고유의 문화가 많이 혼합되어져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는 원주민계들이 항상 성호를 긋고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들의 전통신앙에 관련된 의식에도 참여한다.
항가로아 마을이 한가롭다.
거리는 조용하고,
가볍게 눈인사를 주고 받으며 맨발로 걸어가는 원주민의 모습이 여유있다.
바다에서는 파도를 타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고,
또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 또한 한가롭다.
바닷가에 나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바다 한 가운데
파도타기를 하는 건장한 친구들이 정말로 멋지고 부럽다.
직접 해보진 못하기에 사진에나 담아 보려 계속 시도해 본다.
수십번 셔터를 눌러 보지만 원하는 장면이 담아 지질 않는다.
예전 필름 카메라 시절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어슬렁 어슬렁 아후타하이에 갔다.
해가 서쪽으로 점점 기울어 가자 사람들이 한 둘 씩 모이기 시작한다.
모아이 등 뒤로 노을이 물들고 그 노을빛이 만드는 실루엣이
또 봐도 장관이다.
내일이면 이스터섬을 떠난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는 오늘이 이스터섬의 마지막 날이다.
다른 여행자들에 비해 짧게 머무른 건 아닌데도 웬지 서운하고 아쉽다.
우리보다 일찍 떠난 송작가의 마음을 이제서야 알 것 같다.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항가로와 마을의 한가로움을 구경하며 다녔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남미는 다시 오게 될 지도 모르지만
이스터섬을 다시 오기는 아마 평생에 없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지구의 가장 외딴 섬의 청정한 자연이 선물하는 평화와
그 속에서 그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의 한가로움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 > 남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9_07_28 칠레_산티아고 : 반환점 (0) | 2009.08.02 |
---|---|
2009_07_27 칠레_산티아고 : 산티아고 재입성 (0) | 2009.08.01 |
2009_07_25 칠레_라파누이 : 크리스토발과 호세는 파티를 좋아해 (0) | 2009.07.28 |
2009_07_24 칠레_라파누이 : 오늘의 이동 수단은 두 다리 (0) | 2009.07.28 |
2009_07_23 칠레_라파누이 : 서태지 따라잡기 (0) | 2009.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