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남미

2009_08_11 브라질_상파울로 :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에어모세 2009. 8. 25. 22:06


어젯밤 칼라파테를 출발한 비행기는, 자정 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내공항에 도착했다.
이어서 바로 오늘 아침 6시 반에 상파울로 행 비행기를 타게 되어 있다.
밤 깊은 시간이라 다른 대중교통편이 없으므로 택시를 타고
숙소가 아닌, 국제공항으로 바로 이동했다.


칼라파테 가는 일정을 중간에 끼워 넣어 전체 일정을 조정하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활용하려다 보니 연결편의 여유가 빠듯하게 되어버렸다.
우리로서는 숙박비도 아끼고, 너무 이른 시간에 공항 나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는데 잘 됐다 싶다.


새벽에 출발하는 비행편이 간간히 있어
공항에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항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리 불편해도 조금이나마 눈을 붙여 본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슬슬 준비를 한다.
간단히 고양이 세수를 하고 정신을 차렸다.
남미에서의 비행편은 원월드 제휴 항공사인 란 항공인데
오늘의 비행편은 란과 공동운항하는 탐 항공 비행기이다.
따라서 탐 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수속을 밟기 위해 갔다.


그런데 우리를 대하는 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자꾸 뭔가를 물어 본다.
어디서 왔냐, 어디로 가냐, 전체 일정이 어떻게 되냐, 등등
벌써 수차례 비행기를 탔지만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그리고는 또 한참을 혼자 뭔가를 하더니만
우리 짐을 붙이지 않고 한 쪽에 밀어 놓고
보딩패스에 뭔가를 적어 자기들의 사무실로 인도한다.


다시 사무실 직원이 자판을 두드리며 모니터를 열심히 보더니
결국에 하는 말...


일정을 바꿨으니, 돈을 더 내란다. 추가요금을 내라는 것이다.


갑자기 황당한 마음에
"뭐?" 하는 한국말이 크게 튀어 나왔다.


이번엔 정말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원월드 RWT(Round World Travel) 프로그램은 루트를 조정하면 패널티를 물지만
단순히 일자를 조정하는 것은 패널티 혹은 추가요금이 없는 거라고
오히려 내가 그 직원에게 설명했다.


도도한 표정의 여자 직원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자기는 그런 거 모른다. 우리는 원월드 제휴 항공사도 아니다.
우리의 규정은 이렇다 하면서 규정내용을 프린트 해서 들이 민다.


이거 참... 큰 낭패다...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문제지만
벌써 시간이 6시를 향해 가고 있어, 만약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공항에서 마중나와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내일 예정되어 있는 마나우스(아마존) 투어도 연쇄적으로 못하게 되어
더 큰 손실을 입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란 항공 사무실로 찾아갔다.
우리 상황을 설명했다.
란 직원도 우리의 말을 수긍했다.
같이 탐 항공 사무실로 가보잔다.
이제 해결될 것 같다는 기대로 따라갔다.


그런데 란 직원과 탐 직원이 서로 격하게 얘기하더니만
란 직원이 한다는 말...
자기도 어쩔 수 없단다.
돈을 지불하고 지금 비행기를 타던지 아니면
오늘은 상파울로 행 비행편이 없으니 내일 란 항공 비행기를 타라고 한다.


스페니쉬는 거의 안되고, 영어 또한 유창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들 편의대로 나를 대하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요지는 이렇다.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은 일자를 조정할 경우 아무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원월드 제휴 항공사인 란 항공을 통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출발, 상파울로 도착 비행편의 일자를 변경했다.
실제 운항 비행기는 란과 공동운항(Code Share)하는 탐 항공이다.
탐 항공사는 원월드 제휴 항공사가 아니다.
탐 항공사는 원월드 규정이 아닌 자신들의 규정을 적용하려 한다.


마지막 기댈 곳은 한국의 키세스 여행사.
우리가 원월드 세계일주 항공권을 구매한 곳이다.
마침 한국 시간으로 퇴근 전일 것 같다.
전화방으로 달려 갔다.


하지만 그들도 지금 당장은 어쩔 수가 없다.
비행기를 탈 것인지 말 것인지 먼저 내 자신의 선택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다.


추가요금 250불이 우리에겐 너무 큰 부담이기도 하지만
그것 보다는 아무도 우리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제는 화가 치미는 것을 넘어, 낯선 곳에 외톨이가 된 처량한 기분이다.
한국을 떠나 온 지 반 년이 넘었건만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고민할 시간이 없다.
지금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을 입으므로
허탈한 심정으로 추가 요금을 지불했다.
도도한 그 여직원, 어떤 사람이 정말로 얄밉다는 생각 또한 여행 중에 처음해봤다.


기내에서 아내와 난,
대화도 거의 없이 굳은 표정으로, 그 좋아하던 기내식도 먹는 둥 마는 둥...

 


여기는 브라질, 상파울로,
5년 만에 만나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공항을 나와 마중나온 친구와 만났다.
그의 웃음이 여전히 환하다.


이른 아침의 소동은, 친구를 만난 반가움에 아련히 잊혀지고
치밀었던 화와 처량한 외로움은, 친구의 미소에 모두 녹아 내렸다.

 


제수씨와 귀염둥이 아들, 갓 태어난 딸, 친구의 행복한 가족과의 만남.
이어지는 손수 만든 음식으로 준비한 식사.


낯선 땅,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