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중동

2009_11_20 튀니지_튀니스 : 관성과 적응

에어모세 2009. 12. 6. 05:02


관성이라는 것이 물리학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습성도 관성의 법칙에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쾌적한 환경에 있다가,
더구나 영국에서 사촌동생 덕에 너무나 편안한 생활을 하다가,
하루만에 중동에서 맞닥뜨린 불편함은 우리를 당혹케 했다.


충분히 예상했고 각오했건만...

 

 

 

 

 

튀니지 물가에 비해 썩 저렴하지 않음에도
지금 머무르고 있는 숙소가 쾌적하지 못하고 청결하지 못하다.


언제부터 우리가 쾌적하고 청결한 숙소를 따지게 됐는 지 생각해 보니,
몸은 유럽을 떠나 이 곳에 왔지만
관성은, 우리의 마음가짐을 아직 유럽에 머무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제 도착 첫날,
지저분한 골목 골목을 지나 숙소에 들어선 순간, 아내의 표정이란...


" 동화야 !! ... 찬영아 !! ... 진이야 !! "
그날밤 아내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브라질에서 함께 생활한 조카들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러댔다.
그 편안하고 안락했던 생활의 간절한 그리움을 담아서 말이다.

 

 


공용 샤워실은, 꼭지를 여러번 돌려도 물줄기는 가늘고, 미지근한 온수도 그나마 오락가락이다.
공용 화장실은, 바닥에 물이 흥건하고 중간 커버도 없다. 게다가 남녀공용이다.
남자인 나야 그렇다 치고, 아내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여기서 잠깐,
중동의 화장실엔 변기 옆에 수도 밸브와 그것에 연결된 호스가 있다.
아마도 수동으로 비데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화장실 바닥에 물이 고여 있을 때가 많다.
청결하다고 해야 할 지, 불결하다고 해야 할 지...


첫날 돌아다니다가
별 네개 짜리 호텔앞에, 그 호텔에서 운영하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숙박비는 하룻밤 150불이어서 숙박할 엄두는 못냈지만, 커피는 한 잔에 1,200원이다.
첫날부터 그곳은 우리의 아지트가 되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항상,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호텔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르웬 이라고 하는 앳된 웨이터에게 과감히(?) 팁을 200원씩 쥐어주고 친해져
여러가지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나름 아랍풍의 타일로 장식된 숙소의 방은
어두침침하고, 써금써금하다.
단지 그 뿐이면 다행이다.
더 불편한 생활을 남미에서도 경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틀밤을 지내고 나니,
우리 둘 모두, 무언가에 물린 자국과 함께 손 언저리가 심히 가렵다.
어째 좀 찝찝하다 싶어, 침낭을 꺼내어 몸을 칭칭 감고 잤건만...


도저히 안되겠다.
숙소를 옮기기로 했다.


튀니스 시내의 호텔 밀집 지역을 샅샅히 뒤지고 다녔다.
서 너 시간 발품을 팔아 돌아 다닌 끝에 한 곳을 정했다.
나름 별 두개 짜리 호텔인데,
가격은 하룻밤 40,000원으로 그닥 저렴하지도 않고 화장실도 공용이지만
이전 숙소보다는 훨씬 청결하다.
무엇보다도 무선인터넷이 가능하다.


바로 짐을 들고 숙소를 옮겼다.

 


생각해 보면,
앞서 말했듯이 남미에서 더 불편한 생활도 경험했었다.


( 해발 3000미터가 훨씬 넘는 페루와 볼리비아의 고원 도시들,
  하룻밤 둘이 합쳐 숙박비 만원 안팎의 건조하고 몹시 추운 냉방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지새운 것이 어디 한두번 이었던가... )


그땐 여행초기의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남미의 매력에 빠져,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하며 마냥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유럽을 여행하며 몸에 붙은 관성은
또다시 불편함 속으로의 적응을 더디게 만들고 있다.


편안한 생활에 적응하는 속도 만큼, 불편한 생활에 적응하는 속도는 빠르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