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한 숙소는
이 곳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적 특징을 살린,
큰 암석을 파내어 만든 동굴식 방인데
나름 재밌기도 하고, 다른 중동지역의 숙소에 비해 쾌적하다.
하지만 우리는...
어제의 편안했던 하루를 보내고, 밤에 숙소에서 또한,
뜨거운 물로 씻고 모처럼 쾌적하고 편안한 밤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왠걸... 가장 힘든 밤을 보내고 말았다.
밤새 빈대와 씨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물린 자국을 벅벅 긁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고
아침에 보니 밤새 잡은 빈대의 흔적들이 시트를 물들이고 있을 정도다.
남미와 중동의 저렴한 숙소도 아니고
이 곳들 보다는 그나마 발전되어 있다는 터키에서...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그간에 이런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남미 여행 중 페루에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나서 그랬고
유럽에서 야간기차를 타고 난 후, 그리고,
튀니지에서도 잠깐 그랬다.
위 경우는 손 언저리와 목 부분만 잠시 그랬는데
이번엔 좀 심하게 몸 전체적으로 반점이 나고, 전보다 훨씬 가렵다.
어쨌건 오늘 또 한번의 투어가 예약되어 있다.
역시나 시간에 맞춰 데리러 왔다.
카파도키아의 또 다른 볼거리를 돌아본단다.
처음 찾은 곳은 지하도시이다.
기원전부터 어떤 부족들이 살기도 했다는데
이 지하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건,
종교적 탄압을 피해 살았던 그리스도교도들의 거처였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에 의해 현재의 중동으로부터 발칸반도를 지나 로마까지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지만
당시 모두 로마지배하에 있었고,
공인을 받기 전 까지는 로마의 그리스도교 탄압이 심했다고 한다.
성서에도 카파도키아(갑바도기아)가 자주 언급되는데
터키는 이스라엘에서 로마로 가는 길 위에 있으므로 바울의 많은 선교지가 있다.
안디옥(안타키아), 에베소(에페소), 가이사랴(카이세리아), 갑바도기아(카파도키아) 등등
카파도키아의 이 지하도시는 부드러운 암석 지형을 이용해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탄압을 피해 모인 그리스도교인들이 이 지하도시를 더 깊게 파고 견고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극도의 열악한 상황속에서 살았다니...
햇빛이 차단되어 있고, 물리적으로 폐쇄되어 있는 공간은
단순히 육체적인 불편함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공포감을 주게 마련이다.
그 안에 있다보니 나 또한
그 감정 상태를 이내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처럼 잠깐 둘러보기 위해 1시간 가량 머무는 것도 답답한데
목숨을 걸고 이 곳에서 몇 달, 몇 해를 살았던 그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 신앙이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어떤 차원의 세계일까?
생각에 빠져 있기를 잠깐,
빈대에 물린 자국들이 가려워 온다.
다른 사람들 눈치보며 벅벅 긁다 보니 짜증이 밀려온다.
이 지하도시에서 느끼는 숭고한 감회는
어느새 짜증스런 화로 바뀌고 말았다.
인간이란, 참으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지만
또 어떤 이는 사소한 불편함에 쉬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
예전 허준 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불치의 중병 환자를 돌보는 허준 앞에 자기 발의 티눈을 빼달라며 애원하는 이의 모습...
지하도시를 나와 어떤 계곡으로 이동했다.
계곡 절벽의 경관이 수려하기도 하고
계곡 밑 냇물과 나무 숲이 차분한 정취를 이루고 있지만
이 계곡 역시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이 절벽을 파고 들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계곡을 나와 점심식사를 하고
영화 스타워즈의 일부를 촬영했다는 곳을 들러 (스타워즈의 대부분은 튀니지에서 촬영했다.)
또 한번의 의무적인 코스에서 기념품을 살 것을 은근히 권유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물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밖으로 나와
카파도키아가 점점 어두워져 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 보았다.
짐을 챙겨 나와 항아리 케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는 버스 터미널로 갔다.
오늘밤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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