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야간 열차를 타고 아테네를 떠나 오늘 이른 아침에 칼람바카에 도착했다.
새벽에 한번 갈아 타기 까지 해야 해서, 깊이 잠들면 못 갈아탈까봐 걱정했는데
긴장을 하고 잠이 들어서 인지, 열차 좌석이 불편해서 인지,
갈아 탈 시간에 깨어나 다행히 잘 갈아 타고 도착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캄캄한 역 앞에 서니, 암담하다.
동네도 조용허니 불빛도 별로 없고, 인포도 없는 역 자체가 썰렁하다.
잠이 부족해 힘들어 하는 아내를 일단 역에 두고
혼자 숙소를 찾으러 나섰다.
오늘 따라 그 흔한 숙소 간판도 안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 조차 안 보인다. 하긴 아직도 캄캄한 이른 아침이니...
역에 혼자 둔 아내가 걱정되어
몇번을 왔다갔다 하다보니, 날이 밝았고 숙소를 하나 잡았다.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창을 열어 젖히니
과연 듣던대로, 실로 대단한 풍경이다.
일단 짐을 풀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내일 아침 대신 오늘 아침식사를 얼른 먹고는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메테오라 행 버스를 타러 서둘러 갔다.
메테오라...
이 곳은 정말 흔하게 볼 수 없는 정말로 독특할 뿐 아니라 크기도 엄청나게 큰 기암괴석들이,
완만한 평지에서 갑자기 우뚝 솟아 있는 지형으로서, 그 자체만으로도 신비스러운데
그 바위산 정상, 절벽 끝마다 자리잡은 수도원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행 전부터 많은 호기심을 갖고 있었고,
그리스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꼭 들러보리라 마음 먹었던 곳이다.
지금이야 교통과 기술이 발달하여 접근하는 것이 편해졌지만,
몇 백 년 전, 외세의 탄압을 피해 이 곳에 수도원을 세운 것도 대단하고
그동안 수도원을 유지하고 수도생활을 해온 것도 정말 대단하다.
대단한 정도가 아니고,
수도승들의 종교적 신앙심이 경이롭기 까지 하다.
이들의 수도와 고행을 생각하니
하루 야간이동으로 힘들어 하는 우리의 고생은, 고생도 아니다.^^
올라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지만
수도원들을 둘러 보고 내려올 때는
마치 수도승이라도 된 양, 천천히 걸었다.
야간 열차를 타고 온 피곤한 몸이지만,
여자는 바지를 입을 수 없다는 규정때문에 입구에서 나눠주는 치마를 입은 아내가 재밌기도 하고,
서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메테오라의 절경도 보고,
또 다시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 생각들로
그리 힘든지 모르게 숙소로 돌아왔다.
'속'을 버리고 '성'에 이르려는 종교적 갈구 라고 하는 것이
나와 같은 '속'에서 허우적 대며 사는 인간이 헤아리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예수는 '속'을 버리고, 혹은 '속'을 너머서 '성'을 이루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속'을 끌어 안고 그 속에서 함께 질펀하게 웃고 울고
그럼으로써 '성'에 다다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적 구원을, 신이 계시하고 약속한 내세적인 관점에서,
신의 가르침을 깨달아 사회적인 인간 삶의 의식화의 관점에서 등
다양한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어디까지 그 현장은 '속'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고결한 '성'도 '속'에서 출발하고 그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세속을 버리고 신께 가까이 가고자 수도에 정진했던 성스러운 수도원이
지금은 세속의 관광객들이 편한하게 접근하고 있고 그들에게 기념품을 팔고 있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신의 진리가 왜곡되어 질수록
저 산속 수도원 담장안의 거룩한 제사장이 필요한 게 아니고
이 세속의 현장에서 거침없이 진리를 설파하는 예언자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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