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방콕에 머물고 있는 동안 매일 마시지를 받았고, 매일 팟타이(볶음국수)를 먹었다.^^
그 다음으로 즐겨 한 것은, 카오산 로드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거의 매일 카오산 로드에 갔었는데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로 북적대는 그 흥겨운 분위기도 좋았지만
계속해서 내 눈에 띄는 것 하나가 있었으니,
길 곳곳에 자리잡고 앉아 머리를 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레게머리를 만들고 있는 장면이다.
여행 전 내 일상의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의 모습도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다듬지 않은 긴 머리, 그리고 마구 자라서 덮수룩하게 얼굴을 덮은 수염...
만일 한국에서 나를 알고 있는 이들이 지금 내 모습을 본다면 적잖이 놀랄 것이다.^^
카오산 로드를 거닐면서
이왕에 조금 더 파격적인 변신을 하고 싶어졌다.
레게 머리를 하고 싶어 진 것이다.
아내가 강하게 말린다.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을 뿐더러 이제 곧 한국에 들어 갈텐데,
가족들이 좋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내가 장난스럽게 사진작가 김중만씨 처럼 될 거라고 예상하니
아내가 말하길, 난 머리도 크고 체형적으로 받쳐주지 못하니
김중만이 아니라 이왕표가 될 거라고 단언한다. 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레게 머리에 도전했다.
이 곳 저 곳 돌아다녀 보고 흥정을 한 끝에,
한 곳을 정해 우리 돈 3만원 정도에 합의를 하고
내 머리를 맡겼다.
머리 끄댕이가 땡기니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다.
잘 어울리고 안어울리고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아내의 표정이 별로이긴 하지만
남의 이목도 신경 안쓰는데, 아내의 반응을 신경쓰랴?
(원래는, 남의 이목은 신경 안써도 아내의 반응은 신경써야 되는 건데...)
이 기분으로, 이 모습으로
오늘도 방콕 시내를 돌아 다녔다.
아내도 곧 적응되었는 지, 이전 같이 자연스럽게 나와 붙어 다니지만,
가끔씩 피식 피식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ㅎㅎㅎ
오후 늦게 숙소로 돌아와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중에,
혹시나 놀라실까 싶어 내가 파마를 했다는 정도만 말씀드렸다.
아버지 왈, "네가 애들이냐? 냉큼 머리 풀고 제대로 하고 와!"
전화 끊고 혼잣말로,
"아버지는 참... 내가 어릴때는 어리다고 그런 거 못하게 하시더니,
지금은, 니가 애들이냐 성인이 되어 가지고 그런 걸 하게? 그러시네..." 하고 푸념하자,
옆에서 아내가 깔깔 웃는다. ㅋㅋㅋ
오래전 영화 중에 '네 멋대로 해라' 라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가 있었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네 멋대로 해라' 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네 멋대로 하라' 라는 말에서 무절제와 방종을 떠올린다면 너무 단순한 차원의 반응이다.
이 말은,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한 부분을 채우고 그 속에 편입될 수 밖에 없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지는 의미심장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주어진대로, 남들 하는대로, 통념대로, 시스템대로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도저히 내 멋대로는 살 수 없는 우리에게, 들리는 통쾌한 외침,
네 멋대로 해라 !!!
어쩌면 우리는 그 외침을 따라 이번 여행에 나선 건지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내 평생에
이번 우리의 여행이 내 멋대로 행한 최초의 행동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껏 살아 오는 동안, 많은 것을 내 의지대로 해왔던 것 같지만
그 대부분의 일들은 또 다른 외적인 요소를 감안하고 주변의 눈을 고려하고,
구조적인 시스템의 영향을 반영한 결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레게 머리는
두번째 내 멋대로 한 행동?? ㅋㅋㅋ
고작 헤어스타일 바꾼 것이,
신이 창조한 가장 위대한 작품인 자유 의지, 인간 본연의 의지를 논함에 실례(實例)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
그만큼 인간 본연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 즉, 내 멋대로 하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나를 옭아매는 이 거대한 시스템을 벗어버리기란, 정말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이제 사흘 남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그 거대한 시스템으로 다시 들어가는 시간이...
( 한낱 레게 머리 하나에, 또, 생각이 너무 앞서 나갔다.^^ )
태국 방콕에서의 마지막 밤,
마지막으로 볶음국수나 먹으러 가야겠다.
걸음마다 들썩거리는 머리카락 묶음들이 조금 어색하지만
내 멋대로 한 일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후회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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