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세계일주 배낭여행/유럽

2009_09_07 포르투갈_리스본 : 아내의 그늘

에어모세 2009. 9. 16. 01:40


버스가 리스본에 거의 다 온 모양이다.
바다가 움푹 들어 간 만인 동시에 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고 오며 바라 본,

이른 아침 어둠속에서 살짝 동이 터오는 리스본의 전경이 너무나 아름답다.
하지만 사진기를 꺼내기가 귀찮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기 꺼내기가 귀찮아 내 머릿속 메모리에만 있고
사진기 메모리 카드에는 없는 장면들이 아주 많다.
난 아직 사진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세빌리야 사진사는 어제로서 개점 휴업이다. ㅋㅋ

 


완전히 밝아 지지 않은 시간에 터미널에 내려졌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차분히 앉아 생각해 본다.


가장 좋은 방법이 Information Office(간단히 '인포') 를 찾아 가는 것인데
9시나 되야 문을 열 것이고
책을 참고해 숙소라도 정하려니 인포를 통해 더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섣불리 나서기도 뭐하다.


일단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가서
경찰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하루 패스를 샀다.
( 길에서 도움을 받을 땐 경찰 아저씨가 최고다^^
  많은 여행자들로부터 경찰에게 당한 사연들을 많이 듣기도 했었고, 자국인들에게는 어떤 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어느 나라건 대부분 친절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나라 경찰 아저씨들도 이렇게 친근하면 좋겠다. )


바닷가 근처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인포를 찾아 갈 생각이다.
아내가 몹시 피곤한 듯 하다.
야간 버스를 타고 온 데다가(버스에서 잠을 자면 얼마나 편히 잤겠는가)
내리자 마자 이리 저리 이끌고 다니니 피곤할 법도 했을 것이다.


피곤한 차에 짜증이 좀 난 아내에게
좀 다독이면 될 것을...
거기다대고 내가, 여행의 자세가 어쩌구 저쩌구 잔소리를 해댔다.
아내도 기분이 상했는 지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큰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서로 싸늘해졌다.


인포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다 지도 한 장과 숙소 정보를 얻어
숙소를 찾으러 다니는 그 오랜 시간 동안 서로 말 한마디 없었다.
하필 오늘 따라 모든 숙소가 방이 없어 둘이 그 상태로 한참을 다녀야만 했다.
얼마나 불편한 상황인가..
그럼에도 그놈의 자존심이 뭔 지...


우여곡절 끝에 숙소를 정했다.
서로 멍하니 있다 생각해 보니
어렵게 오게 된 리스본에서 단 하루만 있을 예정이고
우리 손엔 하루 종일 모든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는 하루 패스가 쥐어져 있다.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리스본 시내를 돌아 다녔다.

 

 

 

 

 

 

 

 

 

 

 

 

 

 

 

오늘 하루,
리스본 어부들의 삶의 애환이 짙게 베어 있다는 파두 음악을 감상하려 했으나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우리 나름대로의 여행의 애환만을 경험했고,
포르투갈에서 만나기로 했던 한국인 가족에게
우리의 이런 상황을 보여 드릴 수 없어, 죄송하게도 연락을 못 드렸다.

 

무대뽀로 내가 앞장서 나가고,
한참을 그렇게 가다가 은근히 걱정되어 살짝 뒤돌아 보면
아내가 잘 따라 오고 있음에 안도하며 다시 말없이 앞서 갔다.
그러기를 하루 종일...
돌이켜 보면, 어린 아이들과 같은 유치한 신경전과 유치한 상황이다.


어쨌든,
그래도 항상,
섣부르고 성급한 나를 먼저 감싸 주는 건 아내이다.
먼저 화해의 제스춰도 보여주고, 먼저 이 상황을 극복해 보려고 애쓴다.
평생을 부모님 그늘에 있다가 결혼했으니
이제는 아내의 그늘 밑에 있으련다^^


밤이 되어,
그런 아내의 노력으로 나의 마음은 완전히 누그러졌지만
아직 겉으로는 까칠하다.^^

이럴 땐, 내가 생각해도 여전히 난 어린아이 같다.


나에게는 리스본의 밤이 리스본의 낮보다 아름답고 평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