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은 예루살렘과 아주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예루살렘 성밖의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은 우리는
숙소 근처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30분이 채 안되어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마을의 중심부도 아니고 터미널도 아닌 검문소이다.
베들레헴 도시를 가르는 높은 장벽의 출입구이자 출입자들의 검문소인 것이다.
익히 듣긴 했지만 예루살렘과 더불어 이스라엘에서 의미있는 도시 중의 하나인
이 곳을 가로지르는 장벽의 느낌은 상당히 위압적인 것이었다.
현재의 요단강 서안 지역이라 불리는 곳은
이스라엘 건국 후 이스라엘로부터 밀려난 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하던 요르단 영토였으나
이스라엘이 결국 점령해 버린 곳이다.
팔레스타인의 지속적인 저항으로 인해 문제 발생이 심한 곳에
요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지구를 가르는 장벽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스라엘 서남부 지중해 연안의 또 하나의 팔레스타인 지구인 가자지구는
외국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나
요단강 서안은 오늘 우리처럼 외국인이 오갈 수 있으니
그나마 좀 낫다고 할 수 있다.
어제 이스라엘 입국과정에서 한번 크게 데인지라 좀 걱정했는데
우리같은 외국인은 여권만 보여주니 대강 훑어보고 통과시킨다.
허나 장벽을 통과하며 느끼는 무거운 마음은 쉬이 털어지지 않았다.
장벽을 통과해 베들레헴에 발을 딛자 가장 먼저 맞는 사람들은 택시 기사들이다.
예수탄생과 관련된 모든 명소까지 가는 손님을 호객하는 것이다.
우리도 일단 한 택시를 잡아 예수탄생교회로 이동하는데
기사 아저씨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제안을 한다.
돈을 조금 더 내면 예수탄생 교회, 목자들 교회, 예수수유교회 세 곳을 들르겠다는 것이다.
시간도 충분히 준단다. 여유있게 구경하고 다 데려다 준다니 좋은 제안이긴한데
비용이 더 든다하니...
조금의 고민끝에 편안함을 택하기로 했다.
먼저 방문한 곳은 목자들이 예수탄생의 별을 보았다는 곳에 세워진 기념교회이다.
교회 자체도 잘 꾸며져 있고
뒤쪽 동굴교회 내부에는 예수탄생의 장면들을 재현해 놓았다.
사실은 나중에 모두 알게 되었지만
처음 이 곳에 도착했을 땐 이 곳이 예수탄생 교회인 줄 알고
동굴 내부를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사진을 엄청 찍어댔다.
그 다음 찾은 곳은 예수 모유 수유 교회이다.
즉 마리아가 아기 예수께 모유를 먹이며 생활했던 곳에 세워진 교회이다.
같은 베들레헴 마을로서 여기서 머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돌아와서
예수의 성장기를 보낸 나사렛으로 이주하기 전 까지 기거했던 곳이란다.
특별히 우리가 교회안으로 들어가자
정교회 사제 한분께서 친히 안내를 해주신다.
교회 내부를 둘러보고 뒷편으로 가니 십자군 전쟁당시 십자군의 무덤이 보존되어 있었다.
크리스트교의 성지를 지키고자 로마 교회 권력이 파견했던 십자군..
왜곡된 신앙의 열정으로 무장했을 거라는 십자가 군병들이거늘,
교회 권력의 또 하나의 희생자 일지도 모르는, 어느 시골의 순박한 농부였을 이름 모를 병사의 외로움이 느껴진다.
예수 수유 교회에서 예수 탄생 교회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골목길 양편으로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데
그리스트교와 관련된 물건들로 진열대가 채워져 있다해도
언뜻 보기에 별 다를 것 없는 기념품 가게 이지만
간판을 자세히 보면
교회에 다니는 이들에게는 꽤나 친숙한 단어들이 눈에 띄어
신기함을 넘어 피식 터지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예수탄생 교회에 당도했다.
교회 높이 탑의 위용도 남다르고
벌써부터 입구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있는 걸로 보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성지 순례를 위해 관광을 위해 여행의 경로를 따라 모여들은 듯 하다.
그들과 섞여 우리도 내부로 들어갔다.
워낙에 화려한 교회들을 유럽을 거쳐오며 보아 온지라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교회 내부이지만 무언가 특별함이 느껴졌는데
긴 줄을 늘어선 사람들의 소음때문인지 그 특별함은 이내 사라지고
예수 탄생 기념 장소에서 얼른 사진 한 장 찍고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한참을 줄을 서 기다린 끝에 예수탄생 지점에서 간단한 기도를 올리고
인증서와 같은 엽서만한 그림을 받아들고는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어야만 했다.
위엄과 권위와 그지없는 화려함으로,
보는 이들을 야릇한 감정으로 이끄는 유럽의 대 교회를 보아 왔으므로
그 크리스트교의 산실이자 성지인 이 곳에서는 더 각별해야만 할 것 같았던 내 감정은...
아쉽게도 약간은 허무하게 변해갔다.
교회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그다지 춥지도 않고, 푸른 하늘과 적당한 구름이 어울려 하늘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늘을 배경으로
모스크의 높은 탑 위의 초승달과 교회의 탑 위의 십자가가 나란히 서 있고
그 밑에는 베들레헴 평화 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는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격한 갈등과 분쟁의 중심에 위치한 곳 중의 하나이다.
개인의 기도로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캠페인으로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 민족적, 정치적, 역사적 분쟁이라 하더라도
안타까움의 유아적인 기도가 절로 드려진다.
정치적 평화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모스크와 교회가 십자가가 부디 사이좋게 지내기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의 구시가 즉 역사지구의 중심인 예루살렘 성은
크게 무슬림 지구, 크리스트교 지구, 아르메니안 지구, 그리고 유태인 지구로 나뉘어 지는데
모두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유독 유태인 지구에 출입할 때는 삼엄한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
베들레헴을 들고 나면서 검문을 받아야 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태인 지구에 들고 나면서 다시 검문을 받아야 했다.
유태인 지구는 역시 다른 지구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그래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통곡의 벽이다.
남녀가 구분되어 있고, 통곡의 벽에 접근할 때는 유태인 모자를 필히 써야 한다.
벽에 이마를 대고 울며 경전을 읽는 모습이 낯설고 신기할 따름이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도서관 같이 꾸며져 있었고
일부는 경전을 읽고 일부는 모여 앉아 랍비의 설명을 듣고 있는 듯 하다.
조금은 낯선 광경을 구경하고는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는데
뒤돌아 보니, 유태인 지구의 통곡의 벽 넘어로 현재 모스크인 바위의 돔(Dome of Rock)이 자리잡고 있다.
성을 따라 시온산에 오르니
또 다른 예루살렘의 모습이 보이고
근처의 다윗의 무덤과 예수가 잡히던 밤 최후의 만찬이 벌어졌던 방을 둘러봤다.
유대교 회당의 담을 따라 해질녁의 나름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다시 시온의 문(Zion Gate)을 통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왔다.
이미 밤이 찾아와 불을 밝혔고
다윗의 탑이 성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다.
그리고 UN 직원의 차가 골목 어귀에 눈에 띈다.
유엔이 공평한 중재가 되어 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끝으로 다시 한번,
부디 사이좋게들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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